▲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남소연
4. 현 세대의 계층 간 형평성 외에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화나는 현실이지만 현 정부 들어 금융 공기업을 뺀 공공부문 부채가 450조 원가량 폭증한 게 어쨌든 현실이다. 이미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힘들어 '88만 원'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막대한 빚을 물려주게 생겼다.
그런데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향후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료와 국고지원 규모가 급증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결국 현 세대의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효과가 발생한다. 우리 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건강보험을 통해 2050년까지 25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잠재채무가 누적되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추진해야 한다.
5. 충분한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특히, 야권이 정말 '보편적 복지'를 하고 싶다면 재원마련 대책과 관련 시스템 개편 등에 대해 정직하게 설명하고 국민 다수의 '보편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특히 야권은 야권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의 동의를 최대한 구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 대상은 '보편적 국민'일 텐데 여권 지지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핀란드나 스웨덴 등 이른바 조합주의 복지국가들에서 각 정파와 노사정 3자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심화할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해 한나라당의 다수 분파는 복지논쟁을 할 최소한의 인식수준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권 지지층을 포함해 다수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과정 없이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절대 복지정책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6. 복지 수준을 올리더라도 국내의 사회경제적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최적화해야 한다. 국내의 복지 수준이 워낙 빈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담세능력이나 경제 규모를 현저히 넘어서거나 미래세대의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도록 그 속도와 복지 확대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7.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재원 문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복지 재원 확충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고 있거나 부유세, 사회복지세 등을 증설하거나 아니면 현행 조세 및 재정 구조 틀 안에서 다른 재원을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어떤 식이든 복지 재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한 그것은 공허하거나 재정 악화 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자신들 생색내는데 이미 수백 조 원의 공공부채를 끌어써버려 향후 재정이 급속히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다. 따라서 가급적 향후 재정적자 증가와 생산경제 위축을 최소화하면서도 복지 인프라를 선제로구축하기 위한 세입세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안타깝다.
직장인에게 손 벌리기 전 막대한 탈세 바로 잡으라이에 대해 필자는 나름대로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구조와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 원씩, 약 100조 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50/50전략이다.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 대해 제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탈루소득을 잡아내면 근로 직장인들의 세금을 더 늘리지 않고도 50조 원의 세수는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이 같은 조세 구조개혁과 더불어 무분별한 토목사업 등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단행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의 사업을 정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년 50조 원 정도의 낭비성 지출을 추가로 줄일 수 있다. 엉뚱하게 소수 건설업계와 재벌 기업들을 배 불리며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책사업들을 지탱하고 관료들의 밥그릇을 키웠던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은 이들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을 참고해 보기를 권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 이와 연동한 부패 일소와 정부시스템 개혁만 제대로 한다면 별도의 증세 없이도 건전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갖추면서 삶의 질도 확연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부유세와 사회복지세 신설부터 거론하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주장의 선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를 확충하기 위해 설사 증세를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탈세 엄단과 기본적인 과세 형평성 제고가 우선과제 아니겠는가? 막대한 탈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성실한 납세자한테 세금을 더 내라 하면 어떤 납세자가 "네, 여기 있습니다"하고 기분 좋게 세금을 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