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을 감고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일산 막걸리 포럼에서 그 답을 들었습니다

등록 2011.01.19 18:00수정 2011.0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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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막걸리포럼의 멤버들과 이달의 초대손님인 소엽신정균선생님
일산막걸리포럼의 멤버들과 이달의 초대손님인 소엽신정균선생님이안수
일산막걸리포럼의 멤버들과 이달의 초대손님인 소엽신정균선생님 ⓒ 이안수

#1

2007년에 발행된 인물컬럼집인 '바람의 흔적을 좇아(김미루 저, 도서출판운향 간)'라는 책에 저에 관한 얘기가 실렸습니다.

 

그 책을 받은 며칠뒤, 이 책의 저자인 김미루작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댁에서 가까운 곳에 역시 여행을 좋아하시는 서예가 선생님이 계십니다. 저의 졸저에도 함께 실린 소엽 신정균선생님이신데 두 분이 교유하시면 더욱 즐거울 듯 합니다. 만남을 주선해볼까요?"

 

저는 흔쾌히 그 만남을 반겼고, 이틀 뒤 김미루선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있을 헤이리 청개구리 화랑의 전시오프닝에서 뵙자는 전갈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군중 속에서도 처음 대면하는 순간 서로를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모티프원으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김미루선생님의 예상처럼 우리는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 서로가 반했습니다.

 

소엽선생님이 새벽 2시에 다시 차에 오르면서 검지에 침을 발라 제 이마에 찍었습니다. 그것은 '내꺼'라는 소유권 표시였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5년째 소엽선생님에 대해서만은 정신적인 '첩'으로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순례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결론에 도달한 분으로, 모든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 추호의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분을 뵐 때마다 참 편안했습니다. 제가 '첩'의 직위를 갖는 순간부터 저는 피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소엽선생님이 모든 것을 조직화하고 저는 단지 제 일에 열중하다가 선생님의 차가 나타나면 그저 행선지도 알 필요 없이 실려 가면 되었습니다.

 

우리는 케냐와 탄자니아를 함께 여행했고, 방태산과 천축산의 산그림자를 함께 밟았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현장에 거반 동행했습니다.

 

소엽선생님이 핵이 되었던 사람의 관계들이 제 것이 되었고, 제가 핵이 되었던 사람의 관계가 소엽선생님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나누어가지니 두 배로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로 인해 4배 혹은 6배로 더 넉넉해졌습니다.

 

#2

'일산막걸리포럼('일막포'로 약함)'이라는 일산,화정,파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진기자들의 막걸리 모임이 있습니다.

 

각 매체에 근무하는 사진기자들 중 집이 단지 이 서울의 북쪽 위성도시라는 공통점하나로 모인, 이제 1년 된 기자들의 모임입니다.

 

그 태동은 집이 호수공원 옆인 문화일보 김선규사진부장께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마다 집 인근의 평양빈대떡집에서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한 병을 놓고 그 우울을 다스리곤 했습니다. 한두 시간 막걸리 병을 앞에 두고 자신을 만나고 문을 나서면서 만 원권 한 장을 내밀면 천원을 거슬러주는 참 경제적이기도 한 '황홀한' 비오는 날의 나들이였습니다.

 

김선규기자는 이 슬리퍼에 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의 동네 빈대떡집 나들이를 3년간 홀로 즐기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인근에 살고 있는 다른 동료기자들에게도 이 즐거움을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게 된 것이 '일막포'입니다. 매월 셋째주 화요일 8시 그 평양빈대떡집에서 막걸리 잔을 부딪치기로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회비는 1만 원, 2차는 없습니다. 두어 시간 막걸리를 비우고 홀연히 일어서서 각자의 집으로 가면됩니다. 초기에는 2차와 3차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 다음날 일에 지장을 초래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정작용의 가동으로 1차로 한정한 것입니다. 때로는 10여 명이 훌쩍 넘는 기자들이 참석하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모두 현장에 투입되어야하는 큰 사건이 발생하면 단 두 명만이 참석하기도 합니다.

 

이 알막포에는 초대손님이 있습니다. 동료들끼리의 애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지만 그 잔잔함에 파문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매 모임마다 한 분을 모셔서 막걸리를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도시의 시장님이 초대되기도 했고, 시장의 상인이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각 정당의 국회의원이나 당대표가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막포에 은근히 초대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3

지난 11월에는 소엽선생님이 예술계의 인사로 '일막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기자들이 대부분 연평도로 투입되는 바람에 그 모임이 무산되었습니다.

 

그 미루어진 자리가 어제(1월 18일)이루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언제나처럼 저도 '첩'의 자격으로 함께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빈대떡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리가 무르익어있었습니다. 좌장인 문화일보의 김선규부장, 국민일보의 윤여홍편집위원, 연합뉴스의 김병만부장, 한국일보의 고영권차장, 서울신문의 이호정차장, 헤럴드경제의 박해묵기자 등 여섯 분이 해가 바뀌고 처음 모인 자리에서의 다짐들을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참석한 대부분의 동료들이 회사에서는 곧 데스크 일을 맡아야할 연륜들입니다. 그 데스크를 수행하는 덕목들을 꼽아보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입을 모든 것은 '경청'과 '겸손'입니다."

 

김선규부장님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책임자의 직위에서 누구나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지시'이기 마련이고 이것은 부원들과의 소통을 가로막기 일쑤이지요.

 

우리는 새롭게 각자의 잔에 막걸리 한잔씩을 채우고 소엽선생님이 '빠삐따'로 건배구호를 외쳤습니다.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서 김선규기자가 '삐삐용'으로 화답했습니다.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자' 혹은 '빠지는 사람, 삐치는 사람 용서하자'고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건배구호였습니다.

 

막걸리 잔을 놓은 소엽선생님은 즐겁게 사는 법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저를 주위사람들은 '엔조이교 교주'로 여기곤 합니다. 즐겁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다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이 엔조이교에는 두 가지의 강령이 있습니다. 하나는 '옆 사람을 질겁게(질리도록 즐겁게)하자'입니다. 스스로가 더 즐겁기 위해서는 옆 사람도 즐거워야 됩니다. 다른 하나는 '매 순간 올인 하자'입니다. 주어진 그 시간에 몰입하고 충실하는 것이야말로 후회하지 않는 효율성입니다. 국어시간에 영어공부하는 태도로 인생의 장학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더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남의 칭찬에도 끝까지 귀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참석한 모든 기자가 남자임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숙명을 뒤집어 보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5년째 '첩'으로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수컷들의 숙명은 항상 더 높은 직위를 확보하기위한 뿔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확보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매일 경계를 순찰하며 오줌으로 영역표시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끊임없는 향상의 요구에 시달려야하고,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직장에서는 책임자로서 늘 주도적인 의무를 수행해야합니다. 저는 소엽선생님을 뵐 때마다 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피동으로 사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남자도 때로는 게으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뿔을 연마하지 않는 시간, 영역을 순찰할 필요가 없는 시간 말입니다. 그 게으른 시간이 진정으로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며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함께했던 사람들은 11월이 아닌 연초에 알맞은 화두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4

파전과 빈대떡이 한 접시씩 더 나오고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도 다시 채워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이미 묵은 인연을 확인했습니다.

 

박해묵기자는 96년도에 저를 취재했던 기자였습니다. 당시 '퀸'이라는 여성지의 취재를 위해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박기자께서는 그 해 여름 저의 처가 만들어서 함께 나누었던 열무국수에 대한 추억을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인연은 김선규기자였습니다. 김기자와의 첫 대면은 수년전 강매의 이용대·전신영 부모님 댁에서 어머님이 빚은 술을 맛보는 자리에서 입니다. 그 때 술이 두어 순배 돌고 나서 김기자께서 한 말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운동 삼아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발코니를 향해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발코니에 있던 난초들이 꽃이 피었어요. 우리 집에 온 후로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던 그 난초들이 저의 절을 100여일 받더니 꽃을 피운 것입니다. 식물들도 이렇듯 경배를 받으면 절로 흥이 나서 꽃을 피우나 봅니다."

 

저는 지금도 그 108배를 계속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외부에 출장을 나갔을 때도 계속합니다. 제 휴대폰에 김영동씨의 음악 4곡이 저장되어있어요. 첫 곡이 연주되는 동안은 몸을 풀고, 두번째 곡에서는 어제 한일을 되새김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습니다. 세번째 곡에서는 운동에 전념하고, 네번째 곡에서는 그날 할 일들을 계획해봅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김영동씨의 음악과 함께 이 108배의 명상을 권해서 그중에는 여럿이 아침마다 108배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네 곡의 음악이 끝날 때까지 제가 하는 절의 횟수를 아들이 세어보더니 한 130배정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다시 막걸리 한잔씩이 돌고나서 이호정기자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수습일 때 선배들이 사진은 두 눈을 뜨고 찍으라고 훈련을 받았어요. 뷰파인더 밖의 상황도 파악하면서 셔터를 눌러야한다는 거였어요."

 

"지금도 두 눈을 뜨고 사진을 찍습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한 눈을 감고 찍습니다."

 

이호정기자의 답을 김선규기자가 이었습니다.

 

"사진은 한 눈을 감고 찍는 게 옳습니다. 뜬 눈의 풍경은 카메라에 담고, 감은 눈의 풍경은 마음에 담아야하거든요. 그래야 좋은 사진이 됩니다."

 

참 옳은 말이다 싶은 그 말을 고영권기사가 이어받았습니다.

 

"그럼 두 눈을 모두 감고 찍는 기자는 항상 명작만을 찍으시겠네요."

 

유난히 눈이 작아서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듯싶은 김병만기자를 염두에 두고 한 농이었습니다.

 

빈대떡집에서의 막걸리에 섞어 마신 담론들이 가슴속에 앙금으로 남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2011.01.19 18:00ⓒ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일산막걸리포럼 #일막포 #소엽신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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