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다락에서 영화는 보는 동네 아이들. 밤늦게 영화를 보고 더러 잠을 자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아내는 몸이 몹시 피곤하거나 집에 간식거리며 반찬거리가 없으면 집으로 돌려 보내기도 한다.
송성영
작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부잣집 아이들도 있고 가난한 집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데 어울려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 중에 누가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나오면 부잣집 아이이건 가난한 집 아이이건 좀 더 먹으려고 아우성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부자와 가난의 차별이 없습니다. 빈부는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학교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생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과 차별을 두어 급식을 제공 받는 아이들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상급식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그걸 반대하는 것은 빈부격차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에게까지 차별을 가중시키는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빈부를 경험하게 만들어 또 다른 경쟁심을 부추기는 추잡한 짓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무상급식을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전쟁에 광분하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국가 예산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폭탄 쏘아대듯 펑펑 날리는 그런 사람들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상급식을 제한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단지 생색내기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아주 오래전 여동생이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여동생이 학교에서 설탕 한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불우이웃 돕기를 통해 받아온 설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데 친구들이 여동생을 추천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 게시판에 교장 선생이 여동생에게 설탕 한 포대를 건네주는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학교였는데 교장선생은 베풀고 있다는 것을 널리 자랑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이름까지 팔았겠지요.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불우이웃 돕기 기념사진을 본 여동생의 심적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인 그 어린 여자 아이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시절, 불우이웃 돕기 기념사진이 걸려 있는 게시판 앞에 서 있었을 어린 여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교장 선생이 모든 아이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설탕을 나눠주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겠습니까?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들은 '무상급식 반대'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철면피들입니다. 불우이웃 돕기라는 명목으로 설탕 한 포대 건네주고 기념사진을 찍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올려놓은 파렴치한 교장선생처럼 말입니다.
베품을 받아 본 사람이 베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