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정치 혐오증'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정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가 선보인 '대통령 신년연설 키워드 그래프'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3일 신년연설에서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 같은 정치 이슈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실감나는 비주얼 그래프가 있다. 연합뉴스는 최근 대통령 신년연설을 계기로 '
대통령 신년연설-신년사 키워드 그래프'를 선보였다. 특정 단어의 사용빈도가 높을수록 그 단어를 크게 표현해 연설에서 강조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경제'와 '성장' 그리고 '일자리' 순이다.
그런데 내심으로는 정치현안인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바라면서도 한해의 국정운영 계획을 밝히는 신년연설에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무슨 꿍꿍이속일까? '여대야소'의 구도를 과신한 철저한 '야당 무시'가 아니라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 같은 쟁점현안들을 새해에도 물리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암시로 들린다. 자신에 대한 '소통 부족' 지적도 '정치권의 불만'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치 혐오증이 고질병 수준임을 보여준다.
레임덕이 세인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을 반길 대통령은 없다. 더구나 정치를 오래한 전임 대통령들이 측근이나 처자식의 금품비리 의혹으로 집권 후반기에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것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비리의혹에서 자유로운 이 대통령으로서는 레임덕 우려가 전임자들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불5년'(權不五年)은 엄연한 현실이다. 생명이 유한한 것처럼 엄연한 자연의 섭리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장로 출신 대통령과 '고소영 내각'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에서 후계구도와 관련 목사들끼리 주먹다짐을 한 것이 레임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움켜쥐면 쥘수록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권력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걱정하는 것조차 봉쇄하는 것은 중증의 '레임덕 노이로제'다.
이 대통령의 '소통 콤플렉스'는 거의 난치병 수준이다. "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지 통계를 한번 뽑아봐라"는 항변은 정신병 환자들이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 이참에, 참모들은 지난 3년 동안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통계를 뽑아서 공개해주길 바란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의 너무 다른 '소통 방식'설령 이 대통령이 전임자들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 현재까지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 그것으로 '소통 부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난들,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일방통행'식이라면 소통이 아니다. 또 아무리 부지런한 대통령도 모든 국민을 다 만날 수는 없다. 그래서 언론회견이나 기자간담회는 유용한 소통 방식이다.
대통령기록관의 웹기록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언론회견이나 기자간담회를 150회 가량 했다. 1년에 30회이니 한 달에 두세 번은 기자들 앞에 선 것이다. 언론과의 소통을 중시한 그는 "대화와 설득은 같은 편끼리가 아니라 다른 편끼리 하는 것"이라는 말로 장관들과 참모들에게 기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라고 독려했다.
보수언론을 불신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 언론사와 개별회견 대신에 집단회견을 선호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언론 합동회견, 이런 식이다. 그래서 회견 회수는 적었지만 솔직한 답변을 쏟아내 기자들을 타이피스트로 만들곤 했다. 그는 회견보다 국정과제 토론회나 평검사와의 대화 같은 방식으로 토론과 논쟁을 즐겼다. 다만, 격정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 때문에 해당 기업인이 한강에 투신한 불상사도 있었다.
'일하는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도 개별회견 대신에 집단회견을 선호했다. 문제는 그가 외신회견에 끼워넣기 방식 등으로 '조중동'하고만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는 오찬간담회 같은 데도 배제하고 있다. 전형적인 협량(狹量) 정치다.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와 '호남 콤플렉스'에 시달린 김대중 대통령은 매사에 보수우파와 영남 인사들을 더 의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6.10민주항쟁 관련 인사들도 만났지만 6.25참전용사 위로연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대통령탄핵에 동조했던 재향군인회 회장단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며 대화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몰래 비공개로 비밀회동을 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가 진보진영 인사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한테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영남 출신, 노장년층, 보수층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지지세력하고만 대화하는 것은 '자기편과의 대화'이지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다.
자랑할 때만 회견하고, 불리할 때는 질문 안 받아'소통의 질'도 문제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신년연설 때만 연두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과 소통했다. 그러나 2009년 초에는 대통령 신년연설이 대운하(4대강) 논란으로 희석될 것을 우려해 질의응답을 피했다. 2010년 초에는 세종시수정안 추진 논란이 한창인 때라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신년연설 때도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질의응답 없이 200자 원고지 40장 분량의 연설문을 25분 동안 읽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대로 가면 '기자회견을 가장 안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심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3년 연속 날치기'를 한 뒤끝이라서 그 '원죄'를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기자들이 '청와대발 민간인 사찰'에 대해 언제까지 깔아뭉갤 것이냐고 물으면 난감할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11월 3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직접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자리였다. 2009년 9월과 2008년 11월 기자회견 때도 질의응답을 했다. 전자는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차기 개최국으로 확정된 것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후자는 서울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 안이었다.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 주도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성과를 빨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면 '답'이 나온다. G20 정상회의는 현 정부가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치부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민에게 자랑거리가 있을 때만 질의응답을 하고, 대통령이 답변하기 곤란한 사안이 있을 때는 질문을 받지 않는 일방적 회견이나 담화로 피해 가는 것이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관련 대국민담화 때도 그랬고,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 관련 전쟁기념관 대국민담화 때도 그랬다.
이명박, 전직 대통령들과도 '반쪽 대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