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최석희 민주노동당 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왼쪽)이 또다른 피해자 최준혁씨(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대표) 등과 함께 2009년 9월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앞에서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이유를 밝히라"고 항의하고 있다.
남소연
"형! 이름이 신문에 났네? 기무사 사찰을 받은 것은 알았는데,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생각을 했어. 그동안 돈 못 벌어서 힘들었을 텐데. 대박 나서 형수님이 좋아하겠네."
"야 술 한 잔 사라. 이명박 정부 아래서 국가배상 판결을 받다니, 대단하다.""실장님 우리 언제 만나요? 함 만나서 회포 좀 풀어야지요."오늘(6일) 아침부터 전화기에 불이 났다. 몇 년째 만나지 못한 후배도 전화를 걸어왔고, 그전에는 생판 몰랐던 사람인데, 기무사로부터 함께 사찰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걸어온 이들도 있었다. 어린이 그림책 작가인 김향수씨와 재일민족학교에 '어린이 그림책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는 인터넷 동호회 '뜨겁습니다' 최준혁 전 대표가 그들이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다. 난 국가기관인 기무사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5일 승소했다. 지난해 4월, 나를 비롯해 기무사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한 시민단체 관계자 1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는(재판장 김인겸) "각 1500만 원, 800만 원 등 14명에게 모두 1억2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 상대 소송에서 이겼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재판부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7조의 규정은 개인의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한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까지도 보장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며 "기무사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비밀리에 수집 관리하였다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또 기무사에서 민간인의 신상자료가 필요했더라도 헌법 및 법률의 규정에 따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어 "사무실의 위치, 출입시간, 함께 식사하거나 투숙한 인물 등 공개적인 자료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생활에 관련한 정보들이 자세하게 기재된 점, 담배를 피우는 등 사생활을 직접 촬영한 점, 기무사 소속 수사관들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고 차량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점 등에 비추어 미행, 캠코더 촬영 등의 방법으로 사찰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민주노동당 당직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찰행위는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위법한 행위"이며, 이에 "국가는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을 침해하여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은,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가 2009년 8월 평택역 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파업 집회에 참가한 이들을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잡히면서 알려지게 됐다. 참가자들이 빼앗은 신아무개 대위 수첩과 동영상 테이프에는 나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사생활이 적혀 있었고, 이 상황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도 사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