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이는 정말 산타를 만난 것일까?

등록 2011.01.05 15:59수정 2011.01.05 15:5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타에게 책 선물을 받고 있는 다빈이
산타에게 책 선물을 받고 있는 다빈이이안수
산타에게 책 선물을 받고 있는 다빈이 ⓒ 이안수

어제(1월 4일), 대구에서 신보영 선생님과 친구 분이 오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하는 엄마끼리의 감성체험 여행이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모티프원의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걸음을 멈추시고 훌연 이오덕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마치 이오덕 선생님의 서재에 들어온 것 같아요. 제 친구가 이 선생님의 딸이었거든요. 그래서 간혹 이 선생님의 서재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답니다. 제 친구는 결혼 후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선생님의 서재가 이오덕 선생님의 서재에서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해주었어요."

 

평생을 아름다운 우리말과 문장을 찾아 바로잡고 되살리는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권정생 선생님과 함께 아동문학에 몸 받치신 이오덕 선생님은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이 샘 솟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의 오래된 여러 저작물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장 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등.

 

자녀들이 잠든 시간 두 어머님께서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다빈이를 '산타'로 헛갈리게 했던 저의 초상. 청향재 송효섭 교수님의 최근작입니다.
다빈이를 '산타'로 헛갈리게 했던 저의 초상. 청향재 송효섭 교수님의 최근작입니다. 이안수
다빈이를 '산타'로 헛갈리게 했던 저의 초상. 청향재 송효섭 교수님의 최근작입니다. ⓒ 이안수

오늘(5일) 아침 방금 기상한 막내가 눈을 비비며 서재에 있는 제게 왔습니다. 어제부터 서재를 들락이며 제게 흥미를 보였던 친구였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로 시작한 이 친구는 점점 제게로 다가오면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로. 그리곤 제 옆에서 말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선물주세요."

 

갑자기 산타가 된 저는 참 난감했습니다. 미처 이 친구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곧 글자를 읽게 될 이 친구를 위해 글자가 있는 동화책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스니다. 결국은 동화책 대신 출산·입양·위탁으로 얻은 아이들을 멋진 화원처럼 조화롭게 가꾸어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는 이야기인 <하나네 집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책을 서가에서 뽑았습니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서명을 하기 위해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수줍어서 몸을 살짝 비틀면서 정다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에는 '정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직은 '다'자와 '빈'자가 헷갈리는, 이제 막 이름쓰기를 배우는 참 귀여운 다빈이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산타 할아버지'라고 적어서 건넸더니 옆구리에 끼고 좋아라, 자기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다빈이는 산타를 만난 것일까요?

 

아무튼 저는 다빈이가 이 세상에는 분명 산타가 살고 있다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믿기를 바랐습니다. 산타가 허구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동심을 졸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이가 어른으로 편입되는 시간이 늦을수록 행복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 어린 아이 때의 맑은 영혼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이 어른으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섬돌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빈이는 눈에 눈물 두 방울을 달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다시 대구로 떠났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겠다는 주장으로 엄마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거든요. 그 대립은 바깥의 찬 공기를 염려한 엄마의 승리로 끝났고, 다빈이는 그 패배가 서러웠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더 큰 서러움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다빈이는 오늘 아침 엄마의 강제가 최근 겪은 일중 가장 서러웠던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2011.01.05 15:59ⓒ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산타할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