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년간 진실위에서 일하며 전국적으로 실시한 한국전쟁 중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유해발굴을 현장을 지휘했다. 상항을 정리한다면?
"2005년 12월 진실위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과거사 정리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중에서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국가기구의 공식적 활동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을 실시했다. 발굴은 전국 10개 지역(경산코발트광산, 충북 청원 분터골, 대전시 동구 낭월동, 전남 구례군 봉성산 일대, 경남 산청 외공리, 전남 진도군 갈매기섬, 전남 순천시 매곡동,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일대, 충남 공주시 상왕동 일대, 경남 진주시 문산읍 일대)에서 이뤄졌고, 모두 1617구의 유해와 5600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 한국전쟁 중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민간인학살 희생자 규모는 약 8~1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한 유해는 빙산의 일각 아닌가.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민간인 사상자 수는 아직도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위에서 발굴한 유해가 그 사상자 중 극히 일부라는 건 명확하다. 진실위는 2007년 유해 발굴에 앞서 전국의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 169개 장소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했는데, 이중 발굴 가능한 지역이 59개 지역이었다. 이중 진실위는 10개 지역만 발굴했다.
또한 이 10개 지역 발굴 역시 모두 완료되지 않았다. 경산코발트광산, 충남 공주시 상왕동, 경남 진주시 명석면 일대, 대전시 동구 낭월동 등의 발굴은 예산과 시기 등의 문제가 겹쳐 완료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위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유해 매장추정지도 수십 여 곳에 이른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유해 발굴은 새로운 기초조사를 실시해 보다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국가는 장의사 역할 해야"
- 유해 발굴을 통해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실체가 한국 사회에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유해발굴의 가장 큰 의의와 성과는 무엇인가.
"유해 발굴은 과거 일어났던 학살 사건의 결정적 증거물을 찾아내는 작업이자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죽은 자의 몸은 말이 없지만, 발굴의 정황은 많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유해 발굴이 비단 위와 같은 법의학적이고 '증거 찾기'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유해 발굴은 억울한 희생을 당해 50여 년 동안 산천에 방치된 후 떠돌고 있는 영령들을 비로소 제대로 된 의례로 위로하는 과정이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유해 발굴을 거대한 '사회적 의례'의 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현재까지 소위 '호국영령(예를 들어 전사군인 등)'에 대한 발굴 및 의례만을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국가가 해야 할 의무적인 의례로 여기지 않았다.
진실위에서 실시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은 국가가 최초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국가의례'를 실시하고, 장의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런 사례는 향후 국가 공권력에 짓밟힌 민간인들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