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기뻐하는 일은 무엇인가?

새해맞이 금당산 산행

등록 2011.01.03 19:43수정 2011.01.0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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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산 설경 지난해 세밑에 내린 눈으로 아름다운 설경을 연출하고 있다 ⓒ 임경욱

▲ 금당산 설경 지난해 세밑에 내린 눈으로 아름다운 설경을 연출하고 있다 ⓒ 임경욱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 쏟아진 폭설로 온 세상이 순백으로 변했다. 눈은 하얀 빛깔과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한 해 동안의 시름과 번뇌, 상처를 모두 덮고 새해를 맞이하고픈 사람들의 소망이 눈이 되어 내린 모양이다. 그러나 덮고자하는 아픔이 너무 컸던 탓인지 폭설이 되어 교통사고에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내려앉는 등 그 피해 또한 적지 않다.

 

눈 때문에 새해 첫날은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이튿날엔 쌓인 눈이 많이 녹아 집 가까이에 있는 금당산에 오르기로 했다. 금당산은 서구 풍암동 도심을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304m의 낮은 산으로, 산을 오르는 다양한 산책로가 있어 일년 내내 시민들이 즐겨찾는 쉼터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낮은 산이지만 온 산이 모두 눈에 덮여 방한모에 마스크와 아이젠 등 산행준비는 철저히 했다. 풍암호수 근처 들머리에 차를 세워두고 산행길을 잡았다.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놀아 산행 초입부터 경사면부터 반들반들하다. 아이젠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길이다.

 

눈길로 변한 등산로를 가능한 조심스럽게 걷는다. 늘 아내와 같이하던 산행이었는데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오늘은 혼자다. 홀로 걷는 눈길이 가히 나쁘지는 않지만, 옆자리를 지켜주던 아내가 없으니 허전함이 체감되는 추위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평소와 달리 등산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멧새들이 조잘거리는 소리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쏟아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뿐 눈 덮인 겨울산은 적막하다.

 

낮은 기온 때문에 지치는 줄 모르고 한달음에 1.5㎞를 걸어 황새봉에 도착했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황새정도 찾는 이 없이 눈 속에 묻힌 채 홀로이 산을 지키고 있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나뭇가지와 눈을 털어내는 나무들의 몸부림이 옮기는 걸음마다에 느껴진다. 나무들은 이렇게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다. 도심의 산들이 모두 그렇듯이 금당산의 식생도 그리 발달하지 않아 산 아래는 오리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은사시와 산벚, 개암나무 등이 극히 제한적으로 자라고 있다. 반면 산 능성을 타고 오르면 소나무가 대부분이고 떡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외에는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림사업을 하였으나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황새봉을 지나 고개를 하나 더 넘으면 삼흥정이다. 삼흥정에서 정상까지가 금당산에서는 가장 가파른 코스지만 그 길이가 길지 않아 오르기는 쉽다. 헬기장에 오르면 바로 옆에 깃대봉이 있는 금당산 정상이다. 풍암호수에서 정상까지는 약 2.5㎞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금당산 정산에서 내려다본 광주 시가지는 온통 눈 세상이다. 오가는 차량도 뜸하고 건물들은 눈을 머리에 인 채 신묘년 새아침을 맞고 있다. 자동차 클랙슨 소리, 앰뷸런스의 급한 사이렌 소리, 공사장의 작업소리 등이 먼 세상의 일처럼 아스라이 멀게 느껴진다. 세상은 눈에 갇히고 새해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헬기장과 깃대봉 정상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한분과 아주머니 한분이 노점상을 벌이고 등산객을 상대로 음료수와 오이, 계란 등을 팔고 있다. 아주머니는 언제 올라왔는지 벌써 좌판을 벌여놓고, 할머니는 이제 막 눈길을 뚫고 어떤 젊은이의 부측을 받아 도착했다. 이 산등성이에서 몇 푼이나 번다고 한겨울 정초에도 쉬지 못하고 노구를 이끌고 눈길을 올라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원래는 할머니와 몸이 성치 않은 젊은이 둘이서 장사를 하던 곳인데 언제부턴가 젊은이 대신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 이런 산중에서 노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위법행위겠지만, 오직 그 살이가 안타까웠으면 당국에서도 눈을 감아주고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아주머니가 늘 못마땅하다. 할머니 혼자 벌어먹게 놔두지... 젊은 여자가 오죽 할게 없으면 이런데서 장사를 하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얄밉다.

 

정상에서 동북사면 능선을 타고 1.2㎞쯤 내려가면 옥녀봉이다. 옥녀봉에 좀 못 미친 산마루에서도 한 아주머니가 앉아 커피와 음료 등을 팔고 있다.  살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고작 하루에 천여명이 찾는다는 이 산에 세 사람이나 좌판을 벌이고 있으니 빈한한 그들이 삶이 얼음장처럼 썰렁하게 다가온다.

 

원광대 한방병원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지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수월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바로 내려가면 금당산 종단 산행코스 4.6㎞는 끝이지만, 경사면에서 연계되는 허리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처음 출발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이 길은 생태탐방로로 개발되어 체육시설과 쉼터 등이 잘 갖춰져 사시사철 주민들이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산길이지만 평탄하여 산책하기에는 그지없이 좋다. 중무장을 하고 왔던 탓에 온몸이 땀에 젖는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나무사이로 햇볕이 부서지며 흰눈에 반사되어 빛난다. 기온은 낮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포근하다. 평소 주일 같으면 지금도 방안에 갇혀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텐데, 새해맞이 기념으로 결행한 산행이 나와 나의 몸을 기쁘게 한다.

 

풍암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12시였다. 3시간 동안 산행을 한 것이다. 거리로는 8.2㎞다. 몸에 맞는 운동량이다. 새해에는 나와 나의 몸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나가야겠다.

2011.01.03 19:43 ⓒ 2011 OhmyNews
#금당산 #옥녀봉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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