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남소연
- 2012년 진보집권전략을 논의하면서 야권단일정당론과 진보대통합정당론이 부상하고 있다. 87년 체제로 말하자면 민주대연합론과 독자후보론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의 재판이 되면 2012년 선거에서 민주진보가 승리할 수 있겠나.
"현재 진보통합 논의는 87년의 '독자후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 내에서 독자노선을 고집하는 이들은 소수로 국한돼 있다. 지난 29일 창립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도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세력이 먼저 통합한 뒤에 민주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입장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경험을 되돌아보면 시민회의의 진보통합론이 일리가 있다. 당시 민주당은 과감하게 양보해서 폭넓은 연합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인데도 그러지 못했다.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별다른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진보'를 내세운 이들만이라도 우선 결집해 민주당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만드는 게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돕는 일이다.
물론 진보세력의 통합이 기계적 결속으로만 진행돼선 안 된다. 통합의 과정에서 진보의 자기쇄신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처럼 분열된 이면엔 자신들만 옳다고 하고 남들과 소통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습성들이 있다. 통합과정에서 이를 씻어내야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고 민주당으로서도 진정 두려우면서 손잡고 싶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촉진자 역할을 했던 '희망과대안'이 12월 29일 신년사를 통해 각 정치세력들의 "구체적인 결단"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보정당은 통합을 전진시키라는 주문이다. 포괄적 주문인데 구체화하자면 민주당이 무엇을 얼마나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또 진보정당은 어디까지 통합에 나서야 한다고 보나. "그 문제는 각 정당이 결정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시민들이 갖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회의가 구상하고 있는 바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또 문성근씨 등의 '백만송이 국민명령' 운동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다른 어떤 연합정치 운동보다 더 적극적으로 '보통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운동이라 보기 때문이다."
- '백만 민란'의 경우 12월 29일 현재 4만9천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5만 명이 모이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거나 야5당 당사를 포위하고 촛불시위를 하겠다는 제안도 나왔는데 효과가 있을까. "야권이 모두 꼭 하나의 정당이 돼야 한다는 목표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열성적인 행동대원 100만 명이 모인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적으로도 그만큼 안 되고 내용상 '단순한 지지서명자'가 많다면 정당들더러 하나가 되라 해도 모든 정당이 말을 들을지 의문이다.
목표에 좀 더 유연성을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들라'는 것과 그 정당의 운영규칙 외에는 다른 아젠다가 없는 것 같은데, 5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그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의제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민란' 측에서도 곧 '가치논의'를 하겠다는 걸로 아는데 나는 좀 더 빨리 했으면 한다. 그래야 운동의 응집력과 실천력이 강화되고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띨 수 있게 된다."
- 2012년 선거 전에 섀도우 캐비닛(예비내각)을 미리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섀도우 캐비닛을 전제로 총선과 내각의 후보를 정하자는 내용이다. "'섀도우 캐비닛'은 한국의 정치현실에 잘 안 맞을 것 같다. 야권이 공동정부에 합의하고 그 운영의 원칙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을 미리 특정 자리에 배치하면 국민정서상 '나눠먹기'로 보일 수 있다. 또 보수언론이 얼마나 신나게 이 점을 공격하겠나. 또 내각진용을 미리 노출시켜 득표력을 높일 수도 있지만 한자리 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끼리 입각함으로써 새 정부의 참신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 6·2 지방선거의 최대이슈는 무상급식이었다. 보편적 복지를 필두로 복지국가 담론이 핵심 화두로 부상했는데, 2012년 진보의 이념과 노선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학교 무상급식은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었다. 국민의 정의감을 건드리기도 했다. '왜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이느냐',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이 집권했는데 너무 야비한 것 아니냐' 같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총선이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야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복지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되고 국민 다수가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발전이지만 복지 자체가 선거승리의 호재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복지문제 외에 어떤 이슈가 2012년 선거의 쟁점이 되겠나. "다음 선거에 MB가 안 나오긴 하지만 '반MB정서'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가 되리라 본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제대로 드러내고 정리하는 문제가 2012년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복지문제를 민주주의 및 평화 문제와 제대로 배합해서 그걸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간명한 구호를 만드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 되지 않을까. 다만 구호 만들기는 정치권의 선수들 몫이고 나는 원론적인 이야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 문제가 다 얽혀 있다. 복지문제도 민주주의 문제와 결합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단순히 세금을 더 걷어서 국가와 지자체가 더 많이 나눠주겠다는 방식으론 관료조직만 키우게 될 것이다. 선진국이 경험했던 '복지병'을 앓게 될 가능성도 높다.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우리 현실에 맞게 유도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평화문제도 복지문제와 따로 가는 게 아니다.
복지정책을 시행하려면 정치적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평도 사건처럼 남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런 동력이 마련되겠나. 이처럼 민주주의 심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과제 등을 복지문제와 함께 잘 고민해서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구호까지 만들어내는 정치인이 2012년에 승리할 것이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한국형 복지'를 들고 대선 행보에 나섰는데 이 역시 한계가 있다고 보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복지의 내용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걸로 그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박 전 대표도 MB의 실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 사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것 외엔 날치기를 포함해서 그가 뚜렷하게 자기 입장을 밝힌 바가 없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선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었지만 4대강사업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 '창비주간논평' 신년 칼럼을 통해 "2010년의 시련을 딛고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 시작하는 해"로 2011년을 규정했다. 백 교수가 생각하는 '상식과 교양의 회복'은 무엇인가. 또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일단 '전쟁은 안 된다'는 명제가 이 시대의 기본적인 상식이자 교양이다. 이것조차 부정하는 '보수'라면 진정한 보수주의와 무관하다. 제대로 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 국가재정을 알뜰히 꾸리는 것도 보수주의의 기본이며 '진보'도 공유해야 할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4대강사업을 절차를 무시해가며 추진하고 국가재정을 낭비하고 그 부담을 수자원공사에 슬쩍 떠넘긴다거나 수자원공사가 진 빚을 보전해주기 위해 친수구역특별법과 같은 악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은 보수주의자가 아닌 파괴적 급진주의자의 행태다. 조·중·동의 인정이 아니라 양식 있는 국민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정부라면 당연히 이런 행태를 시정해야 할 것이고, 정부가 그러지 않을 때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국민 모두가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 위해 합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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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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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건, 노태우 때만도 못한 국회·언론·검찰 정권교체 못하면 민주주의 회복불능...엉망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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