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출판, 이창신 옮김) 책 표지.
김영사
물론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와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 주체들이 겉으론 늘 정의사회와 공정사회를 표방해 왔지만 일반 시민들, 특히 서민이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기준과 공동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왔다. MB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공정사회를 외치면서도 공정하지 못한 권력운영과 집행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불신과 불안,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정의와 진실에 많은 사람들이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다. 서점가에도 이 같은 갈증현상이 반영됐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란 책이 올 한 해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물렀다. 교보문고가 최근 발표한 '2010 연간 베스트셀러'에서 종합 1위를 이 책이 차지했다. 교보문고는 "1981년 개점한 이래 인문 서적이 연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학문 후속세대들도 올해 가장 의미 있는 대중 교양서로 이 책을 꼽을 정도로 '정의'에 대한 갈증의 골은 깊다. <교수신문>은 석·박사 채용정보 웹사이트 <교수잡> 이용자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하는 박사와 박사수료, 박사과정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올해의 책'을 이메일 설문조사한 결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응답자들은 가장 주목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32.4%가 이 책을 선정했다.
한 응답자는 "올해 MB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 등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상황에서 정의를 찾고자 하는 대중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라고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대학에서 인기 있는 강좌 제목 중 하나다. 저자에 의하면 '정의'란 화두는 국가의 탄생과 함께 2천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미국사회를 지배해 온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닌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그런 화두가 아이러니하게도 올 한 해 대한민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 그것이 머리는 숨긴 채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비겁한 형태로 어지럽혔다. '공정사회'란 탈을 쓰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진단할지 궁금하다. 그가 책에서 곧잘 던진 질문처럼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정의'에 관한 문제를 쉼 없이 다룬 이 책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행복, 자유, 미덕'에서 찾았다.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올바르게 분배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온도차가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역설해 주고 있다. 그만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의의 작동기제도 다르기 때문에 '정의'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강조된 최대 행복의 원칙과 칸트의 도덕과 자유, 사람과 사물 사이의 정의, 마이클 조던의 돈과 자유시장의 철학, 최소한의 국가 등의 주장과 이론들을 예로 들거나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까지 정의에 대한 명료한 정의를 내리려고 많은 고민을 한다. 그는 결국, 여러 시대적 상황과 경험 등에 비추어 '정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그러나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공정한 분배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가치 측정에 더 큰 방점을 찍었다. 그는 정의가 단순히 국민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높은 도덕적 가치에 더 큰 무게가 있음을 설파한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릇된 것에 가치를 우선 부여한다면 그 피해는 인간과 자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방법 찾아야"가령 물질과 권력의 축적에 탐닉한 나머지 정의의 가치를 잘못 판단하는 순간, 그에 따른 환경,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이 황폐화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민족의 존립에 위기를 끼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도덕성을 줄곧 피력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도덕적 신념에 관한 문제를 피하지 말고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결국, 도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치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사회는 어떠한가. 도덕적 가치를 회피하려는 권력의 습속이 지배하는 한 정의로운 사회에 관한 논의는 한 치 앞도 이끌어낼 수 없지 않은가.
아울러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최소한의 권리와 기회가 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는가?'란 질문 앞에서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의에 대한 사회적 문제와 개념에 봉착하면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것은 마이클 샌델이 말한 것처럼 가치와 도덕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한 조각 희망을 이 책은 제시해 놓고 있다. 살아 있는 시민의식이라면 이를 해결하고 지켜줄 것이란 점을 저자는 암묵적으로 제시했다. "정의로운 사회에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그는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정의는 국가나 권력가, 시민 모두의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전제한다.
재벌과 권력 부패고리, 비정상과 부정부패 현실 고발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