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어떻게 천년이나 살았을까(2)

[서평]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등록 2010.12.23 11:16수정 2010.12.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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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게 뒤떨어지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과 게르만인보다 약하고, 해운력에서는 그리스인만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유대인보다 가난하며, 문화력에서는 오리엔트인에 비해 미개하고, 경작력에서는 카르타고인에게 뒤떨어지는 평범한아니 더 뒤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로마, 자그마치 1500년 동안 지중해를 내해라 부르던 제국. 이 제국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빌려 설명하고자 한다... <기자주>

앞의 글에서 얘기한대로 여기서는 <로마인 이야기> 열다섯 권 가운데 4-6권(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6권 팍스 로마나) 로마가 제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다룰 것이다.


로마는 이리하여 천오백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내가 이 <로마인 이야기>를 어른 모임에서 프레젠테이션할 때 어떤 분이 물으셨다, '로마는 어떻게 천년을 버틸 수 있었냐'고. 나는 그 이유가 여러 가지에 있다고 본다.

하나는 노블리스 오블레주다. 로마의 지도층은 지금의 대한민국의 지도층처럼 썩어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공을 세우고, 돈을 벌면 공공건물을 기증, 보수하는 정신이 있었다.

둘째로 로마는 실패에서 뭔가를 배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전술과 전략을 짜서 임하므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셋째는 오늘날의 국회인 원로원이 기득권이 아니라, 새로운 평민, 신참자들도 받아들여서 항상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서 동맥 경화증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로마는 유럽연합과 비슷한 존재였다.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지금은 투표로 대통령을 뽑지만, 로마는 황제를 뽑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교통이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뛰어난 자를 황제로 뽑는 것이 자연스럽다. 세제에 관해서도 로마는 속주에서 세금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전부 안전 보장비였다.

이런 이유로 로마는 천오백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기를 맞은 로마 공화정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가 등장할 무렵 북아프리카,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까지 제국을 넓힌 로마는 시민권자가 많아지자 더 이상 수도 로마에서 선거를 하기 힘들어졌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으면 공화정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것을 알고 카이사르는 로마의 체제를 제정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카이사르만 봐도 지도자는 과거와 미래를 봐야 제대로 나라를 꾸릴 수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러한가.

2만 4천명을 이끌고 간 갈리아 원정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세 명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삼두정치를 결성한다. 뒤(로마)가 안정된 카이사르는 겨우 2만 4천명을 가지고 지금의 프랑스를 정벌하러 간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더 대단한 것은, 그 와중에도 '갈리아 전쟁기'라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엊그제 알았는데, '갈리아 전쟁기'는 아직도 읽히고 있다고 한다.

갈리아 전쟁 초기에 카이사르는 북해를 본다. 2000명의 양치기가 세운 폴리스가 대제국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감동적이었던 부분이었다.

갈리아 전쟁 중기에는 브리타니아(영국)를 점령하러 도버 해협을 건넌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여기서 쓴맛을 보고, 후퇴하게 된다. 처칠이 카이사르가 영국에 상륙한 시점이 영국 역사의 시작점이라고 했으나 내가 보기에 역사의 시작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갈리아 전쟁의 후기는 카이사르에게 힘든 시기였다. 베르킨게토릭스라는 자가, 갈리아 총궐기를 카이사르가 고생을 조금 했으나, 역시 카이사르답게 승리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후처리를 할 때, 소액의 세금을 매기고 족장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주는 등의 햇볕정책과 동화정책을 썼다. 이 정책이 성공하여, 갈리아는 거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로마는 승리하고도 승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정말 멋진 나라인 것 같다.

여자에게 환심이 컸던 카이사르

한편 나는 카이사르 이야기를 읽으며 카이사르가 너무나 부러웠다. 카이사르는 얼굴도 그리 잘생기지 않았고, 머리 앞부분은 대머리였으며, 청년기와 중년기에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여자들의 환심을 샀고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많은 여자를 사귄 것이라면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의 애인들은 상류층 여자들이니까 모두 아는 사이인데, 한 여자에게라도 원한을 산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카이사르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사귄 여자는 어마어마하다. 삼두정치의 폼페이우스의 아내, 크라수스의 아내, 나중에 카이사르를 살해하는 브루투스의 어머니,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권력을 두고 다투다

갈리아 전쟁을 끝낸 카이사르는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던 폼페이우스와 내전을 벌인다. 전쟁의 결과를 얘기하면 카이사르는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전투를 벌여서 승리한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피신하지만, 로마 장수에게 살해당한다. 카이사르 또한 동방의 대국 파르티아로 원정을 가기 전 살해당하고 만다.

카이사르가 살해된 후 카이사르의 부장 안토니우스는 아내를 버리고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 로마의 영토를 떼어주기로 하고,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벌인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고, 이집트로 도망갔다가 추격을 받아 죽음을 맞게 된다.

로마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브루투스 일당이 카이사르를 살해한 이유는 공화정으로의 복귀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에 카이사르 암살파들이 집권을 했으면 로마는 아마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뽑혔을 것이다. 그러나 열여덟 살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어린 나이에도 혼란을 잘 수습하고, 카이사르의 뜻을 받들어 제정을 창시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로마가 유지될 수 있었다.

보통의 나라들은 한번 침체기를 맞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고려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로마라는 나라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침체기 이후로 700년이나 더 살아남았다. 나는 이런 로마에 찬사를 보낸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시한 로마 제정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제정을 만들었다. 다만 새로이 제정이라는 체제를 창조하지 않고, 공화정 안에 존재하는 제정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원로원 등 공화정의 모든 것들을 남겼다.

황제의 권한도 공화정 시대에도 있었던 것들을 끼워 맞췄다. '프린켑스 최고제사장 호민관 특권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해석하면, 제일인자, 종교계의 최고 제사장(교황같은), 입법권, 사법권, 거부권, 군 총사령관, 위대한 자, 황제...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는 공화정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으면, 바로 제정이 된다. 

내 꿈은 카이사르 같은 정치가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어떻게 남을 설득, 설명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주는 능력을 가진 아주 이상적인 인간. 카이사르" - 본문에서

나는 이 문장들을 읽고 나서 카이사르 같은 지도자가 되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정치가가 된다면 국민들이 폭탄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게 평화로운 나라를 꾸리고 싶다. 최소한 북한을 자극하는 현 정부처럼은 하고 싶지 않다. 현 정부가 하는 일들은 모두 평화를 깨는 것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피폐해지는 국민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나라 안에는 도둑과 해적이 없고, 나라 밖에는 적이 없으니, 그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 <로마인 이야기> 6권 제목)였다.

역사가 여러 세기를 흘렀는데도 우리는 그 정도도 못 하는 것일까. 역사는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가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걸까.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읽고 과거를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읽음으로서 적어도 로마에 대한 오해(첫 편에서 말했듯, 카이사르가 자기만의 제국을 세우고 싶어 했다거나 로마가 숱한 나라들을 식민지배 했다고만 보는 것들) 몇 가지는 풀렸을 것이다.

다음 글(7-9권)에서는 로마가 제정으로 들어감으로서 일어난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기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율리우스 카이사르 #줄리어스 시저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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