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노동이 숙명일 수는 없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공장 점거 파업이 남긴 것

등록 2010.12.22 19:19수정 2010.12.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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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했습니다. 회사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습니다. 한두 달 월급 못 받아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돈이 있는 사람들도 아닌데, 아이들 학원 끊고 돈 빌려가며 파업을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점거농성을 하는 곳에 출입이 통제되고 회사는 수시로 전기를 끊고 수도를 끊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깜깜하고 추운 공장바닥에서 비닐을 덮고 버텼습니다. 음식도 들어가지 못해서 식사라고는 한끼에 한줄도 아니고 하루에 한줄 김밥이 전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5일을 버텼습니다.

 

대법원이 일깨운 상식

 

이런 투쟁을 선택한 이유는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2년이 넘게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연하게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현대자동차가 도급으로 위장해서 불법적으로 고용해왔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저지른 이는 현대자동차이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 불법의 피해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문제로 교섭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법을 저지른 회사는 오히려 당당하게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성기업이라는 업체 하나를 폐업해서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려고 합니다. 명백한 도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투쟁이 시작되자 노동부와 검찰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합니다. 불법파견에 대해 시정조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노동부가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이 파업은 불법"이라고 규정합니다. 불법파견의 주범 정몽구를 처벌 한번 안한 검찰도 "이 파업은 불법"이라고 맞장구칩니다. 언론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을 계속 떠들어댑니다. 회사는 수시로 전기와 수도를 끊고, 굴삭기를 동원해서 농성장 벽을 허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합니다.

 

정규직 노조인 현대차동차 지부는 이 투쟁에 함께하려는 이들을 '외부세력'이라 부르며 색출하고, "농성을 풀어야 교섭을 할 수 있다"면서 농성자들을 어르고 달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하는 동안 한 번도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이들은 파업을 할 권리도, 독자적으로 교섭을 할 권리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농성은 25일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이 투쟁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단지 "2년이 된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법대로 정규직화하라"고 하는 것이었다면 법원의 판결을 더 기다리고 정규직이 해주는 교섭을 기다리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판결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노동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단지 임금이 적은 것이라면 견딜 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가해지는 차별로 인한 모멸감, 수시로 다가오는 해고 위협 속에서 생겨나는 무기력함,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삶 속에서 숨죽이고 마음 졸이고 살아야 했던 비정규직의 삶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숙명이 아니며, 당연하게 주어져야 했던 권리를 빼앗겨왔던 것임을 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분노와 깨달음이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이끌었습니다. 더 이상 현실에 순응하며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과 내 노동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대로 2년 이상 되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모두에게는 삶의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를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요구로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5일 동안 춥고 배고픈 농성장에서 그 압박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무기력하게 일해 왔던 지난날을 떠올렸고, 회사 측의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청구액을 보면서 자신들이 회사에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겨주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도 실질적인 사용자인 현대자동차 측과 교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점거농성에 들어가니 이토록 난리들을 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힘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농성을 빨리 해제하라고 독촉하는 정규직 지부를 보면서 "정규직들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고, 농성장에서 버티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단결할 수 있구나"를 생각했습니다.

 

점거농성 25일 만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장을 내려왔지만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섭이 시작되었지만 이 교섭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고도 반성하나 없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현대자동차 자본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호락호락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총회를 열었고 교섭이 계속 진전되지 않으면 다시 파업에 들어가자고 결의했습니다. 쉬운 결심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번 자신의 인간됨을 선언한 이들은 다시는 노예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투쟁은 끝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윤보다 인간을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절반이 넘는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삶이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설계할 수 없고, 빈곤이 지속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은 투쟁하기도 어렵습니다. 불만을 표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가는 당장에 해고될 테니까요.

 

그래서 비정규직을 숙명으로 알고 마음속에 분노를 간직한 채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분노가 사회적인 약자에게로 터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본에서 벌어졌던 '묻지마 살인'처럼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노동을 하면서 즐겁지 못하고, 일을 통해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노동하는 이들은 누구나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노동하는 이들은 누구나 먹고 살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노동하는 이들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당연한 권리는 기업의 이윤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이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기업은 존재할 가치도 없습니다.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인 세상에서 이런 지극히 당연한 상식은 이단아로 취급받습니다. 그래서 이런 당연한 권리를 상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너무나 힘든 길을 걷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6년간의 투쟁, 94일간의 단식을 해야 했고,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상과 폐렴을 견뎌가며 고공농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선 이들의 투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리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리고 그보다 앞서 투쟁했던 이들은 우리에게 "노동의 불안정성을 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경쟁사회에 이겨서 극히 일부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단결해서 노동하는 이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가 내 권리를 찾아주지 않으니 우리가 스스로 그 권리를 찾아보자고 말합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도 지속됩니다. 이제 우리가 투쟁할 차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혜진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2.22 19:1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혜진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동 #인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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