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종중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 '연고항존자'(年高行尊者)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고항존자란 종중에서 항렬이 가장 높고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종중(宗中)은 공동선조의 후손들에 의해 선조의 분묘 수호 및 봉제사와 후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단체를 말하며 구성원(宗員ㆍ종원)은 성인이다.

종중의 대표자는 종중의 규약이나 관례가 있으면 그에 따라 선임하고 그것이 없다면 종장 또는 문장이 그 종원 중 성년 이상의 사람을 소집해 선출하며, 평소에 종중에 종장이나 문장이 선임돼 있지 않고 선임에 관한 규약이나 관례가 없으면 현존하는 연고항존자가 종장이나 문장이 돼 종중총회를 소집하고 그 회의에서 종중 대표자를 선임하는 것이 일반 관습이다.

사건은 이렇다. 2005년 8월 A종중의 일부 종원들이 종중 선조들의 분묘가 다수 설치돼 있는 임야를 매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A종중의 차석 연고항존자인 B씨는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곧바로 종중의 창립총회를 소집해 종중 규약을 제정하고 C씨를 대표자를 선출하는 결의를 했다.

그런데 소송과정에서 피고 종원들은 "소송 진행을 위해 대표자를 선출한 종중총회가 연고항존자가 아닌 B씨에 의해 소집됐다"며 "이 창립총회는 적법한 대표자에 의한 소집절차를 밟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B씨는 2007년 1월 연고항존자에게 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중총회를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연고항존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응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연락 가능한 종원 130명에게 우편송달이나 전화 등의 방법으로 종중총회 소집통지를 했고, 2007년 3월 개최된 종중총회에서 이미 제정한 종중규약을 승인하고 C씨를 대표자로 선출하는 한편 2005년 10월 이후 C씨가 종중의 대표로서 행한 일체의 행위를 추인하는 결의를 했다.

A종중은 "종원 8명이 종중 소유 토지를 임의로 팔았다"며 "종중 재산을 횡령한 토지대금 51억 6000만원을 배상하라" 낸 사해행위취소 등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피고들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A종중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은 차석 연고항존자가 종중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지와 특히 여성이 연고항존자가 돼 종중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지 여부였는데, 대법원 제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두 가지 모두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종원들이 종중재산의 관리 또는 처분 등에 관해 대표자를 선정할 필요가 있어 적법한 소집권자에게 종중총회의 소집을 요구했으나, 소집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소집하지 않을 때에는 차석 연고항존자 또는 발기인이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며 1993년 대법원 판단을 재확인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 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종중의 구성원이 되는 점, 연고항존자는 종중의 대표자가 선임돼 있지 않고 선임에 관한 규약이나 관례가 없을 경우 대표자 선임을 위한 종중총회의 소집권을 가지는 데 불과하므로 여성이 연고항존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종중사무의 집행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종중총회의 소집권을 가지는 연고항존자를 확정함에 있어 여성을 제외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여성을 포함한 전체 종원 중 항렬이 가장 높고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연고항존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으며,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돼 왔으며, 앞으로도 이런 남녀평등의 원칙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