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의 한 식당 앞에 놓여진 메뉴판. 관광객은 물론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뉴요커들이 갈비(바비큐), 비빔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곰탕 같은 한식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최경준
"많은 돈 투자해서 예쁘게 식당 차려놓고 '이런 게 한국식당이다', 오케이! 그렇게 차려놓으면 여기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것 생각 안 하나?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미국인들이 '거긴 그런데, 여긴 왜 이래?', 이렇게 되면 여기 영세 업소는 망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괜히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열부터 받는다."
정부가 나서서 뉴욕 한복판에 짓게 될 '플래그십' 한식당이 미국판 '통큰 치킨'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정부가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만으로도 뉴욕 고급 한식당은 '대박'을 칠 가능성이 높다. 뉴욕의 외교관과 공무원, 국내기업체 주재원들이 대부분 이 식당으로 몰려들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그들로부터 접대를 받는 뉴욕 지도층이나 연예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소문이 확산될 것이다.
곽자분(56) 강서회관 사장은 한창 밀려들기 시작하는 손님을 접대하면서도 "정부가 많은 돈을 투자해서 (한식당을 설립)하면 모든 면에서 영세 업소와는 확연히 다를 것 아니냐"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해 뉴욕에 (식당을) 차리면 음식도 업그레이드된 것을 제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삼성 등 대기업 주재원들이 바이어를 대접할 때 아무래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한국 내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앞세운 대기업의 횡포에 소매업자들이 애를 먹었다면, 뉴욕에 있는 많은 한식당들은 본의 아니게 '한국 정부'와 경쟁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뉴욕 고급 한식당 관련 예산 통과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한식이미지를 고급화하려면 고품격 한식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고급 한식당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외국에서 한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거점도시에 플래그십 한식당을 열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뉴욕 맨해튼에 들어설 한식당은 면적 330㎡(100평)에 좌석 100~150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식세계화추진단과 '광우병 파동'으로 물러났던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식재단이 이 사업의 실무를 맡고 있다. 정운천 이사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이 성공하면 세계의 대도시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혀, 앞으로 더 많은 국가 예산이 해외 고급 한식당 설립 사업에 투자될 것임을 시사했다. 뉴욕 고급 한식당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타이 국영식당 만든다면?"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새해 예산에 이른바 '김윤옥 고급 한식당' 설립을 위한 50억 원은 있지만,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다.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예산,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양육수당 예산 등도 모두 삭감됐다. 반면 내년 한식 세계화 예산으로는 총 310억 원을 배정했다.
방학 때 밥을 굶어야 하는 100만 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한식 세계화라는 '영부인'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였을까? 정부가 나서서 뉴욕 한복판에 설립한 한식당의 '대박'이 곧 한식 세계화의 성공이라고 규정 할 수 있는 것인가?
32번가에서만 20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해온 미국 시민권자인 김재용(47. 한식당 '한강' 부사장)씨는 "투표권이 없는 내 의견은 훈수밖에 안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과거 80년대에 비해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권력에 대한 견제가 부족한 것 같다"며 "법을 국회의원들이 만들기 때문에 국민들이 표로 평가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