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구제역과 복지공포증은 닮았다?

또 다시 불거진 무상급식논란, 그리고 한국의 복지

등록 2010.12.17 18:54수정 2010.12.1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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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안동에서 발생한 돼지 구제역으로 경북지역 축산 종사자들의 시름이 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천·안동지역에서만 발견되던 구제역이 경기도 지역으로까지 번지면서 경기도내 시군당국에서 대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포천시는 24시간 가동하는 구제역 방역 상황실을 설치해 운영 중이고, 이미 구제역이 유입된 연천군과 인접한 고양시에서도 구제역의 관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일단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돼지가 발견되면 반경 수 킬로미터 내 가축은 모조리 폐기처분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의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집권당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중앙정부는 구제역보다 때 아닌 복지공포증의 확산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시의회에서 제정된 무상급식 조례를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망국적 포퓰리즘'운운하며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킨 서울시의회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오시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이들에게 질 좋은 점심을 무상으로 주자는데 다 큰 어른이 대의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어찌되었든 현재까지 오세훈발 '무상급식 공포증'은 소속당인 한나라당과 윤증현 재정기획부장관에게까지 전염돼 '대규모 복지예산 삭감'과 '복지망언'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돼지구제역이 가뜩이나 어려운 축산농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고, 복지공포증이 대다수 서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질환(?)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복지가 레저야?

 

  지난 15일 시민들과의 오찬에서 오고간 윤증현 재정기획부 장관의 복지예산 관련 발언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공개돼 한 바탕 큰 파장이 일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윤증현 장관은 "복지 같은데 돈 쓰면 남는 게 없다",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겨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같은 발언과 함께 "4대강 사업이 내년 말에 공사가 끝나고 홍수도 방지되고 좋아진다"고 밝혀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예산이 4대강 예산을 갉아먹을까 우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쳤다. 바람을 타고도 전염된다는 구제역 못지 않은 복지공포증의 놀라운 전염성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장관의 이번 발언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복지에 대한 입장은 그 뚜렷한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복지 같은데 돈 쓰면 남는 게 없다'는 발언은 현 정권이 전체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사회보장제도 보다는 실효성마저 불투명한 대규모 토목사업에 더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을 의미하며, '복지를 즐긴다'는 발언을 통해서는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의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올바르게 정의하자면 복지란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기는 레저가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절대다수 국민들의 형편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안전망이다.

 

가봤어요?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복지국가'하면 몇몇 북유럽 국가들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이내 '노인들이야 살기 좋지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내지는 '무슨 재미로 살아요?' 같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 중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갖춘 나라 1위',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나라 1위', '국가경쟁력 1위' 등의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 같은 덴마크의 경쟁력이 오랜 시간동안 잘 구축되어온 사회보장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흔히 '보편적 복지'라 부른다. 이 말은 '세금을 거둬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거둔 세금으로 사람들이 어려워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시행되고 있는 복지가 전자에 해당하는 미국식 선별복지라면, 이번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은 후자에 해당된다. 때문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장하는 '부자급식'은 이 같은 복지의 개념자체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줄기차게 외치는 '기업프렌들리', '경제대국' 등의 국가적 목표는 G20정상회의나 4대강사업 같은 대규모 이벤트로 달성 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덴마크의 경우처럼 국민들이 느끼는 생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주고, 경제의 핵심인 고용과 실직의 유연성·안정성을 모두 갖춰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어려운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사회안전망, 즉 복지제도를 통해서만 갖춰나갈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북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한국형 복지'에 대한 일관성 있는 논의와 실험들이 이뤄져나가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복지를 레저로 여기는 나라, 예산안을 불과 몇 분 만에 처리하는 나라에서는 그 같은 논의와 실험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2010.12.17 18:54ⓒ 2010 OhmyNews
#돼지구제역 #무상급식 #오세훈 #윤증현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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