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 해안가. 구시가지와 달리 버려진 건물들이 아직도 많다.
Kart Kubarsepp
바다가 낯선 항구도시 사람들 탈린의 유럽문화수도 행사는 2002년 열린 유로비전 이후 에스토니아를 유럽을 넘어 세계에 알리는 대규모 국제행사가 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조직위원회에서 단독으로 행사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모전을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이다. 조직위원회는 900개가 넘는 의견들을 국민들로부터 모았고 그중 251개를 추려 행사 기획에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7000여 가지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 수많은 생각들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행사 주제인 '바다 이야기'이다.
항구도시인 탈린에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가 있지만,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바다는 그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다는 중세에 탈린에 살던 무역상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선진 기술과 학문들을 전해주는 창문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이민족들의 침입이 이어질 수밖에 없던 지리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 여전히 바다는 이 도시 사람들에게 낯선 곳이다.
발트해 최대의 항구도시인 탈린 시민들에게 바다가 여전히 그리 친밀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국 사람들은 적잖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는 소련의 지배를 받는 내내 바다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는 해변을 따라 고급식당, 쇼핑센터, 석양이 아름다운 산책로 등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탈린의 해안은 그렇지 않다.
탈린 해안가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지어진 회색빛 공장들만이 즐비하며, 대부분 군사시설이었기 때문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도 당시의 시설들은 역사의 상처로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탈린 시민들은 그 회색 벽돌 무더기들을 문화와 예술 활동이 넘쳐나는 놀이터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활동은 내년에 절정에 이를 것이다.
2011년 유럽문화수도의 주제인 '바다 이야기'는 해안가에 자리한 탈린의 지리적 특성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탈린 시민들에게 한때 바라만 봐야 했던 바다를 돌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1년 탈린은 설치예술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야외에서 영화가 상영되며, 불꽃축제 등이 열리는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변화한다. 또한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인, 3만 명이 모여 거대한 합창을 만들어내는 청소년 노래대전이 7월 1일부터 3일까지 펼쳐진다.
이번에 탈린은 핀란드의 투르쿠와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가 멀어 공동 작업을 기획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안에 왕복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탈린과 투르쿠는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투르쿠의 대표적인 무용단인 아우린코발레티 극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춤추는 탑'이라는 공연이다. 10미터 높이의 철제탑 속에서 마술과 무용 등이 어우러져 진행되는 이 공연은 4월 투르쿠 초연 후 탈린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