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선생초상-박생광식으로바라보기루쉰, 선생은 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했다
김은곤
난 부산 기장 해변에서 그림을 업으로 알고 살아가는 화가다. 내게 청춘의 기억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최루탄 냄새, 백골단, 입시지옥, 어지러운 사회, 주머니의 궁핍함… 내게 청춘은 끝도 없는 길고 긴 터널같은 시간이었다. 난 그때 입시에 실패했고 지금도 고졸이다.
당시 대학생에 대한 묘한 반감도 있었다. 그들이 왜 비싼 등록금을 내고 군홧발에 채여가며 거리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일말의 적개심도 일었다. 그 때의 나는 박정희의 죽음에 버스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성 통곡을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군대 영장을 받고 술에 찌들어 살던 내게 문학하던 선배가 던져 준 김수영 전집과 <우상과 이성>. 책을 읽은 나는 쇠망치로 뒷머리를 가격당한 느낌이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1985~87년 서릿발같은 엄혹함 속에서의 군대 생활 중 숨어서 읽던 사회과학 도서들은 날 영창도 살게 했지만 내겐 꿀물처럼 달았다. 그렇게 선생은 내게 다가왔다. 꿀물 아니 감로수였고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