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8코스
유혜준
아이젠을 준비한 것은 오버였다.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가는 것도 아니고, 지난밤에 눈이 내리긴 했지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 것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아이젠을 챙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강화도에는 눈이 내린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혹시 눈이 쌓인 길을 걸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그저 기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눈 내린 흔적이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길에 간이 심심한 김장김치 위에 마무리로 뿌리는 꽃소금처럼 눈이 남아 있기는 했다.
12월 9일,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 보러 가는 길'을 걸었다. 강화나들길은 1코스부터 8코스까지 9개 구간이 있는데, 이날 8코스를 끝으로 강화나들길 9개 구간을 다 걸었다. 1코스를 걸은 것이 지난 10월 21일이니, 기간으로 따지면 한 달 반이 채 안 걸린 셈인가? 일 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매주 강화도를 찾았고, 하루에 한 코스씩 강화나들길을 걸었다. 그렇게 강화도를 8번 찾아갔다.
여행이란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매주 강화도 행 버스를 타면서 강화도에 익숙해지면서 정이 드는 듯했는데 마지막 코스를 걷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강화도와 영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강화나들길을 걷느라 정작 강화도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기에 조만간 다시 강화도를 찾아 정해진 길(강화나들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걸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라고 지금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