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원 치킨' 판매가 시작된 지난 9일 오전 11시 롯데마트 영등포점에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김시연
5000원에 팔린다는 롯데마트 '통큰치킨' 논란이 연일 뜨겁다.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소비자의 권리와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 논쟁에 롯데마트 통큰치킨까지 등장하면서 이 문제가 방송 토론 주제가 되고, 정치권 공방까지 한층 치열해진 모습이다.
누리꾼들은 '얼리어닭터' '닭세권' '계천절'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논란에 가세했고, 쏟아지는 패러디물들은 논란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도 눈길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13일, 롯데마트 측에서 16일 이후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러나 논란 끝에 나온 판매 중단 선언이 상생과 공정사회의 여론에 굴복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세업자들의 반발과 누리꾼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던 롯데마트가 느닷없이 판매 중단을 선언한 이유가 미심쩍기 때문이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글을 남겨 우려를 표명하고, 프랜차이즈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하겠다고 나서는 등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다.
닭도 청와대 허락을 받고 팔아야 하는 세상"닭도 청와대에 허락받고 파냐"는 조롱 섞인 비난은 통큰치킨 판매 중단 선언이 권력의 입김과 프랜차이즈 기업들간 파워게임의 결과일 뿐이라는 여론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000원 통큰치킨은 16일 사라지겠지만 대형자본의 탐욕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또 다른 대형자본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승리자의 특권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정작 피해자는 프랜차이즈에 많은 돈을 내고 이름을 빌려 쓰는 자영업자, 그리고 그 이름도 빌리지 못하고 시장 한 모퉁이에서 치킨을 파는 영세업자들이 아닐까? 또 2만 원에 육박하는 치킨 값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면서 진지하게 논의를 이어갔던 네티즌들도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 논란은 여기서 그치고 말 것인가? 소비자 권리와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 문제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논란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는데, '그렇게 반대하면 안 팔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판매 중단을 선언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회적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말뿐인 이명박 정권의 상생과 공정사회가 아닌, 서민들이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상생의 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번 기회에 대형 자본의 사회적 책임이나 '착한 소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의미 있게 들린다.
신자유주의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각종 문제들이 불거졌다. 기름 값을 낮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 주유소 허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 상권 초토화, '소비는 이념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던 이마트 피자 논란, 이런 와중에도 재래시장을 돌면서 상인들에게 인터넷 공동 구매로 활로를 찾아보라는 이 대통령의 '안목' 까지.
이런 논란이 나타나는 시기와 현상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혼란을 공정 경쟁이라며 적극으로 방임해 온 정부, 그리고 소비자를 위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유통시장 전체를 장악하려는 대자본의 음모가 만들어 낸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