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에서 바라다보는 풍경. 바닷물이 맑고 투명하다.
성낙선
의욕은 물론, 호기심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내포리의 해안도로를 달려 신촌삼거리에서 머뭇거린다. 이대로 해안을 따라가면 '저도'라는 작은 섬을 돌아 마산의 남쪽 끝에 있는 '원전항'까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들쭉날쭉한 해안 길을 구석구석 들어갔다 되돌아 나와야 하는 길이라, 시간이 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곳을 모두 거쳐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신촌삼거리'가 갈림길이다. 신촌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남쪽에 있는 저도와 원전항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좌회전하면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산항으로 가는 길이다. 현재 시간 오후 3시경, 이 시간에 저도로 길을 잡을 경우에는 인적이 드문 해안도로나 산길에서 밤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곳에서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제 입이 아파서 더 떠들어대고 싶지도 않다.
이것저것 대충 따져본 끝에 결국 마산항으로 방향을 잡는다. 현실적인 선택이지만 비겁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저도 방향으로 길을 잡기에는, 그동안 내 의지와 용기가 많이 약해진 탓이다. 의욕은 물론이고, 호기심마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낯선 곳,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곳에 선뜻 발을 들여놓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여행이 점차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격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러다 대충 해치우고 보자는 식으로까지 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여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산항으로 가는 길에, '안녕로'라는 이름의 독특한 해안도로 위를 지나간다. 바닷가 산 아래로, 좁은 길이 구불구불 산비탈을 넘어간다. 인적이 드문 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마침 왼쪽 산 너머로 살짝 해가 넘어간 뒤라서 산그늘이 짙다. 지금은 날이 추워서 다소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나무 그늘 짙은 산 속을 달리는 것만큼이나 시원하고 상쾌한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가는 차량마저도 드물다. 아스팔트만 걷어내면 바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길이다. 욕심 같아선 이 길을, 자동차 통행을 막고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들고 싶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안녕로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자전거여행 중에 내가 얼마나 안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만큼 여행 중에 의욕을 잃고 시름에 잠겨야 하는 일 같은 것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꿈 같은 길, 꿈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