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대, 성탄카드로 '작은 책'은 어떤가

다가오는 성탄절, 카드 대신 '선한 책'을 받았습니다

등록 2010.12.11 17:18수정 2010.12.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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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카드를 대신한 선한 책자'. 제목 치고는 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탄 카드 인기가 시들해진 건 꽤 됩니다. 그리고 책자면 책자이지 또 선한 책자는 무슨 뜻입니까? 어제(12월 6일) 우편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누런 봉투에 직접 쓴 송수신인의 주소와 이름이 정겹게 느껴지는 우편물이었습니다. 소포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일반 우편이라고 하기에도 내용물의 부피가 가볍지 않았습니다.

 

보낸 곳은 강남구 신사동에 주소를 둔 (사)동의난달 운숙미술회로 되어 있었습니다. 뭘까? 입체감이 드러나는 성탄 카드일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소형 책자일지 모릅니다. 그 단체 이사장으로 봉사하다가 지금은 명예 이사장으로 있는 신재용 선생으로부터 가끔 책자를 선물로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 오혜령의 신앙 시집을 받은 적도 있고 또 작년에는 한의사이신 신재용 선생과 (사)동의난달 의료위원회가 공동 집필한 <놀라운 가정요법>이라는 묵직한 책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성탄 카드가 많이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한 해를 지켜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함과 새해 소망을 직접 써서 정성스럽게 보낸 성탄 카드를 받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귀한 일입니다. 그런 카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좋은 매개물이었습니다.

 

성탄 카드 대신 도착한 '작은 책'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사랑을 더 다져지게 만들고, 삶에 선한 영향을 입은 사람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그리고 좀 서먹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한 장의 성탄 카드가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은평천사원 장애아동들이 직접 제작한 카드를 100여 장 이상씩 구입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인사말을 써넣어 보내는 데는 꼬박 일주일을 소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또 기쁘게 그 일을 감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발달된 첨단 기기(機器)에 나도 모르는 사이 슬며시 편승하고 말았습니다. 전자 우편(이 메일)을 거쳐 금년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성탄 카드를 대신할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간사하고 경박스러운지요.

 

다시 우편물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사)동의난달 운숙미술회에서 보내온 우편물은 작은 책이었습니다. 일반 책이 아닙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볼 수 있도록 점자로 찍은 글 밑에 같은 내용의 글귀를 인쇄한 작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각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동시에 읽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우편물을 개봉하며 제가 느낀 마음이 어떠했는지 아세요? 눈물이 핑 돌며 콧잔등이 찡해 왔습니다. 책의 제목도 이렇습니다.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앞에 붙어 있는 부제격의 설명을 읽어야 책의 내용이 온전히 눈에 잡힙니다.

 

'2010년 시각 장애 학생 미술작품 초대전 전시회 관람객이 남기신 글 모음'.

 

지난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대구 갤러리 M에서 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사)동의난달 운숙미술회와 대구MBC가 공동 주최한 전시회였습니다. 여느 전시회와는 달랐습니다. 작품을 출품한 학생들은 모두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시각 장애인은 미술 작품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그린 그림들이고 만든 조각품들이었으니까요. 어려움 속에 꽃 핀 작품들이어서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시회 이름도 '마음으로 봐 주세요'였던 것 같습니다.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이어진 전시회였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그 중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맹학교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사랑으로 연결되어 지식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고 있지만, 여간한 소명의식과 열정 가지고는 유지되기 힘든 곳이 바로 맹학교입니다.

 

'마음으로 봐 주세요'란 전시회에는 악조건 속에서도 인내·사랑·열정으로 빚은 작품들이 출품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였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출품시킨 청주 맹학교, 대구 광명학교, 인천 혜광학교, 충주 성모학교 등지의 교육기관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메일이나 문자 대신 작은 책으로 성탄 카드 대신합시다

 

대구에서 처음 열린 시각장애 학생들의 '마음으로 봐 주세요'란 전시회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주셨습니다. 그 때 방명록에 남긴 글들을 모아 일반인과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책으로 만든 것이 제가 어제 우편으로 받은 책입니다. 작지만 의미 있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많은 방문객들의 글 중에 제가 남긴 글도 이렇게 인쇄되어 있더군요.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사랑의 눈이 열립니다"(김천 덕천교회 이명재 목사).

 

제가 보기에도 좋은 글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한 마음과 아름다운 마음이 만나 서로를 위하면, 사랑의 눈이 열려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이런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고, 저는 그런 사회를 소망합니다.

 

(사)동의난달 운숙미술회에서 특별히 제작해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또 평소 운숙미술회를 아껴주는 분들에게 성탄 카드를 대신해서 보낸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작은 책은 내용과 품고 있는 뜻을 조금만 읽을 수 있어도 기쁨을 샘솟게 만듭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음으로 만나는 장(場)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참으로 참신하고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이런 것을 성탄절이 낀 연말연시에 보내서 따스함을 선사하겠다는 것이요. 사회가 점점 굳어 사랑이 메말라 가는 시대임을 생각할 때 이 작은 책의 가치는 더욱 돋보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문화가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편리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점점 붙들어 맨다 해도 (사)동의난달 운숙미술회처럼 작은 책을 골라 카드 대신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그 책 속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소외받고 있는 계층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지요.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작품 전시회를 방문하고 남긴 글들을 모아 만든 예쁜 책을 받고, 저도 작은 책을 선택해서 성탄 카드 대신 보낼 마음을 갖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얹어서.

2010.12.11 17:18ⓒ 2010 OhmyNews
#동의난달 운숙미술회 #미술전시회 #시각장애인 #성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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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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