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가 보이는 바람의 언덕. 왼쪽 언덕 아래는 도장포.
성낙선
나는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이렇게 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은 가능한 한 그날 저녁에 정리해서 올리겠다는 약속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됐다. 사진을 카메라에서 컴퓨터로 옮겨 담는 단순한 일조차 미룰 때가 있으니 두말 해 무엇하랴.
이번 여행에서 주요한 목적 중에 하나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날의 바닷가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거였다. 독자들이 내 글과 사진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실제 바닷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그걸 해내지 못하게 돼서 대단히 미안하고 섭섭하다.
이제 남은 건 애초 목적했던 대로, 이 여행을 끝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완주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앞으로 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은 당장 거제도가 최대의 걸림돌이다. 거제도가 나를 몹시 힘들게 만들고 있다.
어제는 남쪽 해안을 돌면서 거의 녹다운 상태로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거제도의 동쪽과 북쪽 해안을 돌아야 하는데, 이 지역은 내가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는 곳이다. 완주는 과연 내가 처음 목적했던 대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은 사실 모든 게 다 불투명하다.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 아침엔 다리가 몹시 아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땐 정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펜션을 나서자 바로 오르막이다. 무릎 관절에 채 '윤활유'가 돌기도 전이다. 2차선 도로가 산 속을 헤집고 올라간다. 여차재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 고개 위로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기가 막힌 건지 숨이 막힌 건지, 이제는 더 이상 내 입에서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숲 속 어디에선가 계속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때가 때인 만큼 그놈들이 나무 꼭대기에 앉아 나를 주의 깊게 내려다보고 있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거제도는 제주도만큼이나 까마귀가 많은 곳이다. 가는 곳마다 머리 위에서 깍깍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