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북한이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국통신앞에서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들이 '강력응징' '초전박살'을 적은 인공기를 들고 김정일-김정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우성
동서양 없이 언제나 전쟁을 선동한 것은 신문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 직전 영국의 전통지 <더 타임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직전 <뉴욕월드>와 <뉴욕저널>, 그리고 태평양 전쟁 직전 <아사히> 등의 일본 신문은 연일 '불의에의 응징'을 내세우며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애국심'을 들먹였다. 결과 나라 전체가 순식간에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조중동 수구 언론은 평소에는 햇볕정책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가 북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터지자 때를 만났다는 듯이 단호한 응징론을 제기했다. 그들은 탈레반 인질 사건 때에도 아프간에 특전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군불을 지폈었다. 그리고 최근 천안함 사건 이후 아예 노골적으로 '전쟁불사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5월 20일자 <중앙일보>에서 김진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오산·수원의 지휘관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 합동으로 3일 내에 북한 장사정포의 최소 70%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선동했다.
더욱 큰 문제는 '평화'를 말하면 '종북'이고 '자제'를 언급하면 반역으로 모는 수구신문들의 극단적인 흑백논리가 국민에게 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조선일보> 칼럼 하나를 더 읽어 본다.
"상당수 좌파세력은 아예 김정일 편이다. 우리 민·군이 죽고 연평도가 불바다가 됐는데도 평화를 들먹이며 북의 포격이 우리 포격에 대한 대응이라거나 북한 쪽 민간인 포격 금지를 요구하는 정신 나간 종북주의자들이 그들의 우두머리다."(11월 26일 자 김대중 칼럼)언론이 전쟁을 선동하면 국민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지식인들은 지레 겁을 먹고 부화뇌동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가에 나의 리비도를 바치련다" 이것은 1차대전의 전운이 감돌게 되자, 그 유명한 프로이트가 내지른 말이다. 이어 유럽 사회는 순식간에 전쟁의 광기에 휘말려 들었다.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이 광기는 계층의 구별 없이 확산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광기의 화염에 불을 지핀 것은 일반 국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쟁의 군불을 피운 자들은 우리가 지금 세계적인 석학이거나 예술가거나 성직자로 기억하고 있는 무리들이었다.
영국의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심장에서 나오는 고름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는 엽기 수준의 전쟁 예찬론을 폈다, 나치에 협력한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등은 "투쟁은 거룩하다"고 외쳤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섬뜩한 전쟁 선동 책자를 여러 권이나 써냈다.
어디서나 가장 무식하게 투쟁을 예찬하고 증오를 부추긴 집단은 기독교 성직자들이었다. 유럽 각국의 주교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전면전을 부르짖었다. 온건하다고 평가 받던 어떤 성직자는 "죽이되 미워하지는 말자"라고 아주 요상하게 말했다. 한 영국 성직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 양의 진노'를 들먹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목사는 "예수님 같으면 전투병으로 나서지는 않았겠지만 의무병 정도로는 참전했을 것"이라고 설교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는 지금 여과 없이 발설되고 보도되는 '북한 응징론'이나 '전쟁불사론' 등에서 이런 현상의 전조를 목격하고 있다. 지난 북핵실험 때 자칭 40년 서정시인이라는 정현종은 <중앙일보>에 기고한 시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시 <무엇을 바라는가>를 발표했다. 이에 화답하여 시인 겸 KBS 선임PD 장충길은 <붉은 강>이라는 제목의 선동적인 시를 중앙일보에 보냈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 겸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갑자기 좌익 문인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최근에는 기행(奇行) 작가 이외수도 전쟁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 몫을 거들었다. 그는 "늙었지만 방아쇠 당길 힘은 남았다. 위기 상황이 오면 기꺼이 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북핵실험 당시 교회들마다 목사들이 열변을 토하며 햇볕정책을 질타하고 김정일에 대한 응징을 갈파하는 설교를 했는데, 이런 예배는 천안함 사건 이후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기도할 때에도 자기들의 하나님에게 북한 정권을 단죄해 달라고 절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