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사무실서 기록만 읽고 재판하지 말라"

이용훈 대법원장 1일 대법원청사 법관 임용식서 인삿말

등록 2010.12.01 17:48수정 2010.12.0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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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국민과 진정 소통하는 재판다운 재판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일 대법원청사에서 열린 경력 법관 임용식에서 "법관이 사무실에서 기록만을 읽고서 하는 재판은, 기록을 아무리 꼼꼼히 읽고 많은 검토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는 좋은 재판이 되기 어렵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는 당사자들의 살아 있는 뜨거운 숨결과 진실한 마음을 느끼는데 한계가 있다"며 "법정에서 진솔한 마음으로 당사자와 툭 터놓고 소통해 분쟁 속에 숨어 있는 애환과 고통을 진정 이해하고 공감하는 재판을 해야만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24일 자질과 품성이 검증된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검사·교수 출신 등 18명을 경력 법관으로 신규 임용했다. 이들은 사법연수원에서 신임판사 연수를 받은 뒤 일선 법원에 배치된다.

 

이날 이 대법원장은 법관의 자세를 강조하는데 중점을 뒀다. 먼저 "법관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항상 고뇌하고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성직"이라며 "시대상황이나 주변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법관이라는 직책이 갖는 무거움과 막중함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인 만큼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법관직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여러분은 그동안 재야 법조, 검찰, 공공기관 등 다른 법조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법원의 재판을 몸소 체험하며, 나라면 저렇게 재판하지 않을 텐데,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던 때도 많았을 것"이라며 "여러분이 법관으로 재판할 때 법대 아래에서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이는 여러분이 법관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좋은 재판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채찍질이자 자양분이 될 것이고, 사법부가 발전하는 데도 더없이 소중한 밑거름"이라며 "법관 생활 내내 이러한 초심을 잃지 말고 법원의 관행 중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과감히 지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기존 법관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에 그대로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며 "나아가 동료 법관들에게 여러분만이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파하고 함께 공유해 나간다면, 법원의 발전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사법부의 재판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기에 한없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므로,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라는 바탕 없이는 올바른 재판권의 행사는커녕, 그 존립 자체가 어렵다"며 "법관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국민과 진정 소통하는 재판다운 재판을 해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법관직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판단하는 자리인 만큼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그 판단자에 어울리는 덕목과 자질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 판단이 결과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판단 받는 사람이 그 판단에 승복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법관으로서 합당한 것인지를 계속 반문해 봐, 공정성이나 청렴성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며 "이것은 법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 도리이며, 이를 지킬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아예 법관직에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실력 배양을 한시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치밀하고 섬세한 법논리를 배양하는 데 힘써야 할 뿐더러, 과거에 배웠던 이론이나 법리의 정당성에 관하여도 항상 의문을 품고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의 덕목을 갖추고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어떤 문제를 풀거나 법리를 연구하면서 다른 법관과 토론하고 상의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며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이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오류가 없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니, 진실한 벗인 동료 법관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교류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도 주저 없이 법관의 길을 가겠다는 이 대법원장은 "여러분이 선택한 법관직은 한없이 외롭고 힘든 자리이고, 정당한 판단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해야만 하는 어려운 자리"라면서도 "그러나 법관직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예로운 자리임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분쟁과 갈등을 치유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값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끝으로 "사법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사법부가 사회 내에서 제 역할을 하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조속히 이룩하는 것"이라며 "사법부가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활약이 대단히 중요한 만큼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법관직을 수행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0.12.01 17:48ⓒ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 #경력법관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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