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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자료 사진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라 부르는 한일합병이 강제로 이루어진지 100년 되는 날이다. '국권피탈일'이라고도 부르는 1910년 8월 29일로부터 어언 100년이 흘렀다는 상징성 때문에 방송과 신문은 떠들썩했지만, 그날이 지나고 나면 금방 망각한다. 심지어 일본이 한국을 지배함으로써 우리의 근대화에 이바지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본이 건설한 철도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철도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강제로 병탄하고 철도를 건설한 것이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철도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철도를 건설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대한제국 정부도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독립협회 회원을 비롯한 당시 지식인들도 철도가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라 철도 건설을 일본에게 강탈당했을 뿐이다.-책에서
일본의 단발령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사람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노서아가비(커피)를 즐기며 서양 문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신학문을 배우고자 일본을 향하는 관부연락선을 타기위해 경부선에 몸을 싣는 젊은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리하여 1930년대가 되면 기차는 조선인의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유학이나 돈을 벌고자 고향을 떠나며, 조선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신천지 간도로 떠나며, 금강산이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조선인들은 기차를 탔다.
그런데 조선인들이 이처럼 교통수단으로 기차를 이용할 때,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물자 수탈도구로 백분 활용한다. 압록강변의 울창한 목재와 광물자원을, 호남 지방의 쌀을, 강원도와 함경도의 석탄을 일본으로 실어 가는데 철도는 일등 역군(?)이 된다.
저자는 일제가 조선병탄과 대륙진출을 목적으로 건설한 우리 철도에 얽힌 이와 같은 수많은 사연들을 풍부한 역사 자료들을 바탕으로 쉽고 명쾌하게 들려준다. 때문에 우리 땅에 철도가 건설되던 1890년대 후반 이후 1980년대까지, 중요한 사건들이 참 많아 알려고 들면 숨 막히도록 복잡하게 다가오던 우리 근·현대사를 쉽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혹자들은 일본의 철도 건설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망언을 한다. '눈물과 한의 철도 이야기'란 부제의 이 책 <경부선>이 부디 그들로 하여금 당시 일본의 철도 건설로 소중한 생명을 빼앗긴 수많은 조선인들을 향해 백배사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