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댁에 가면서 가져간 포도, 포도를 먹기 전 형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조종안
9월30일: 오랜만에 내려온 안나(딸)와 함께 '궁전'에 가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식대는 '안나 엄마'(아내)가 지출. 오는 길에 형님댁에 들렀다. 포도(8000원)와 감(5000원)을 사가지고 갔다. 과일값은 안나가 지출. 형수가 포도를 씻어 내오면서 함께 먹자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안나 엄마'가 그냥 내려오는 바람에 방석이 따라 내려왔다. 해서 게으르다며 퉁을 놓았더니 "조씨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해서 화가 났다. 형님은 물론, 형제들과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무시당하는 발언이어서 참을 수가 없다···. 이튿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출근을 했고, 제가 말이 없으니까, 딸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손으로 어깨를 살포시 누르며 "엄마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니니까, 아빠가 참으셔요···"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딸에게 "너도 결혼하면 남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당부하면서 심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실수가 원인제공을 했는데요. 큰소리치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실언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했으면 허허 웃고 그냥 지나갔을 터인데, 사과를 안 하더라고요. 해서 생활비를 받는 저로서는 그동안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 방식 바꾸기 첫째는 아내에게 '밥 안 차려주기'였습니다. 밥은 하되, 배고프면 각자 알아서 먹자는 것이었지요. 함께 있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혼자 주방으로 가서 밥을 차려 먹었습니다. 둘째는 '아내 승용차 이용하지 않기'였는데,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불편해도 참고 지냈지요. 아내도 그동안 편했을 겁니다.
셋째는 '생활비 안 받기'였습니다. 생활비 속에는 제 용돈이 포함되어 있어서 받으면 아내의 밥을 차려주어야 했으니까요. 대신 그날그날 필요한 금액만 타서 쓰겠다며 11월 생활비도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막무가내로 제 서랍에 넣어놓더군요. 그러나 지금까지 보관만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퇴근하고 오더니 "혼자 먹으니까 미안하네!"라면서 단감을 두 개 주더군요. 하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먹기 싫어서였지요.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 제주산행은 언제 출발하느냐고 묻기에 알아서 다녀올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때는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었거든요.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거나, 쉬는 날 말없이 나갔다가 들어와도, 장모님이 계시는 부산에 간다고 해도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외지에 나갔다가 심야버스로 새벽에 도착해도 택시를 이용했으니까요. 그러니 대화가 단절될 수밖에요. 교도소 담벼락처럼 높고 답답한 부부관계는 가을 내내 이어졌습니다.
대화의 돌파구를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