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을 살리는 길

등록 2010.11.29 10:52수정 2010.11.29 10:52
0
원고료로 응원
교육 문제는 비단 협소한 교육 운동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기를 쓰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는 이유는 학벌위주의 시스템과 경쟁의 논리가 일상화된 사회풍토 속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각개약진이자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이 문제에 정부가 결단을 내리고 정책적으로 개입한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시스템과 경쟁의 논리를 혁파할 수 있습니다.

대졸-고졸 간 임금격차를 근소한 차이로 줄이되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공무원 사회만이라도 임금 격차를 줄이거나 임금 상한제를 적용하여 격차를 완화하십시오. 다시 말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인간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사회 복지 시스템을 갖추십시오. 그러면 적어도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처럼 지적 호기심이나 학문을 원하는 자들만 대학을 갈 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도 없을 것이며 '대학을 가지 못하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슬픈 이념에 구속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어설 만큼 이미 대중화 되었습니다. 또한 대학을 진학해서 전공을 공부해도 전공대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학 간판을 비롯하여 대학교육이 학벌위주의 시스템에서 단지 하나의 스펙을 쌓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졸-고졸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정책적 개입은 학벌위주의 시스템을 깨뜨리는 작업이자 경쟁의 논리를 허물어뜨리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선진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가입한 OECD 평균치(2007년 기준 초등 21명, 중등 24명)에 근접하도록 공교육 재정지출을 혁신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사물함 놓을 공간도 없을 만큼 비좁은 교실은 실상 교도소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습니다. 교도소가 평당 1.3명인데 반해 교실은 평당 2명이거나 더 높은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이 한 20평 정도이니 생각해 보십시오. 학교를 수용소 수준 이하의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인성교육이니 학교폭력을 논한다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급 당 학생수가 20명 수준이면 교사들은 아이들 이름을 전부 욀 수 있으며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아이들의 일탈과 비행은 월등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오. 교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맺도록 교육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숲이 우거진 학교환경까지는 제공하지 못해도 최소한 삭막한 교육 환경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 위정자의 1차적 소명입니다. '방과 후 교육 활성화'를 통해 그럴 듯하게 사교육을 흡수,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통계를 발표하거나 뻥튀기하여 떠들지 마십시오. 그것 또한 교육현실을 기망하는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 타령을 하지 말고 부유세를 도입해서라도 고등학교(가능하면 북유럽처럼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무상급식을 실현하십시오. 사회복지와 평등주의 마인드로 다져진 핀란드의 교육력이 세계 최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력만 세계 최고가 아니라 사회와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인드를 간직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경쟁의 논리는 실상 교육의 본질과는 상극의 논리입니다. 교육은 인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인데 삶을 가꾸는 논리는 협동의 논리이지 경쟁의 논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장의 학습노동에 시달리며 중·고등학창시절 대부분을 참고서와 문제지로 뒤범벅이 된 채, 제대로 된 교양서적이나 사색의 시간을 가질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빈곤한 아이로 우리 학생들을 내몰지 마십시오. 수능 찍기 시험에 유능한 아이들이 나중에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갈지도 의문이거니와 세상을 향해 따뜻한 마인드를 간직하기를 기대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빠의 노동시간보다 초등학교 아이 자신의 학습노동 시간이 많음을 한탄하며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절규한 어린 초등학생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시대 교사들에게 호소합니다. 봉건적인 차르체제를 붕괴 시킨 시위행렬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마카렌코까지는 아니더라도 낡은 교육질서에 맞서 싸운 교원노조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를 적어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잘못된 현실에 순응하며 그것이 교육인 양, 아이들에게 쉴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내모는 교사들을 보노라면 측은한 마음을 넘어 이젠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제발 아이들을 오전 7시 반 ~ 오후 10시까지 내몰지 마십시오. 아이들에게 학습을 강요하기보단 좋은 인문교양서적을 권해 주십시오. 가난한 영혼을 살찌우고 듬직한 인격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국력이자 경쟁력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 관료들에게 호소합니다. 자신의 승진을 위해 대단한 입시제도 개혁인 양, 교육정책을 제시하려 노력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교사의 잡무를 혁명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십시오. 교육청이나 외부 기관에서 내려오는 공문의 90%는 교육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나아가 법으로 정해진 교원 수를 채우고 학교당 전문 상담교사와 영양교사 그리고 사서교사를 정규직으로 발령을 내십시오. 아이들의 삶의 질이 현격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교직 생활 20년이 넘도록 교육청 장학사로부터 교육활동에 긴요한 장학활동을 제대로 지원받은 적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징계하기 전 문답서를 받으러 올 때나 장학사가 오더라도 부담을 느꼈던 기억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예산이 부족하여 법정교원수를 채울 수 없다면 교육지원청이라고 이름만 바꾸지 말고 장학사들을 다시 학교현장으로 복귀시켜 수업을 하게 하십시오. 교장, 교감도 5시간이든 10시간이든 수업을 맡게 하십시오. 현장감이 떨어진 학교관리자가 어떻게 단위학교 일선 교사의 어려움을 이해할 것이며 나아가 단위학교 장학활동가로서 제 소임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교육기관인 학원이 공교육기관보다 4배나 많고 사교육비가 공교육예산을 능가하는 기형적인 한국교육의 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은 학벌 위주의 사회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4대강 사업 등 국론이 분열된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 애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적 갈등비용이 적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토목건설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면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는 4대강 사업보다 청소년 회관을 전국적으로 건립하십시오.

인근 4개 중고등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는 지상 20층 지하 4층 규모로 청소년 회관을 건설하십시오. 청소년 회관에는 음악감상실/영화감상실/독서실/도서관/소모임 학습실/수영장/테니스장/클라리넷/피아노/해금/대금연습실/소규모작업실/대강당/소강당/상담실/동아리별실/헬스장 등 그곳엔 특기 적성을 다양하게 살릴 수 있는 공간이 배치될 것입니다. 나아가 정규직 지도교사를 채용하십시오. 그러면 아이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꿈을 키울 것입니다.

더불어 정규직 일자리 증대는 88만원 세대의 실업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소비지출을 증대시켜 내수경제를 진작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의 동인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는 출산율 증대로 이어져 멀리 보면 인구문제/사회경제문제 해소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학교마다/기관마다/기업체마다 병설유치원을 세우고 정규직 유치원교사를 채용한다면 분명히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한국 교육을 살리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도 그리 멀리 있지도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하성환 기자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하성환 기자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벌주의 #4대강 사업 #정규직 #핀란드 교육 #방과후 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땅 사든가, 통행료 내든가' 길 가로막은 8.4평 주인 '땅 사든가, 통행료 내든가' 길 가로막은 8.4평 주인
  2. 2 무능한 윤 정부... 조만간 한국기업 수백개 사라질 위기 무능한 윤 정부... 조만간 한국기업 수백개 사라질 위기
  3. 3 괴물이 된 그 부부 괴물이 된 그 부부
  4. 4 '차가운 명사수' 김예지, 수십킬로 고갯길 자전거 출퇴근 '차가운 명사수' 김예지, 수십킬로 고갯길 자전거 출퇴근
  5. 5 겉은 쪼글쪼글, 속은 단짠단짠... 환호하는 식구들 겉은 쪼글쪼글, 속은 단짠단짠... 환호하는 식구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