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켠에 자리한 조그마한 <겸손서점>.
최종규
(1) 작은도시 책방이 살아날 길이란...부산에서 살아가며 부산 보수동으로 꾸준히 마실을 하는 분이라면, 이곳 보수동에서 슬프게 문을 닫으며 사라지는 헌책방을 알아채는 한편, 이곳 보수동에 새롭게 움을 트며 씩씩하게 태어나는 헌책방을 알아봅니다. 예전을 생각한다면 헌책방 숫자는 줄어들었으나, 그예 사라지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줄어드는 숫자만큼 늘어나지는 않으나 알뜰히 책살림을 꾸리는 곳은 어김없이 있고, 새롭게 책살림 북돋우는 곳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2010년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일곱 번째 책방골목 잔치'가 펼쳐졌습니다. 2010년 9월을 잣대로 볼 때 이곳에 깃든 책방은 모두 마흔두 곳입니다. 보수동에서 처음 '책방골목 잔치'를 열 무렵에는 모두 쉰여섯 곳이었으니 일곱 해 사이에 열네 곳이 문을 닫아 슬픈 노릇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겸손서점>과 <책의 마음>과 <글벗서점(두 번째 가게)> 세 곳이 새로 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일곱 해 사이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열기로는 올해가 처음이군요. 그렇다면 지난 일곱 해 사이에 열일곱 곳이 문을 닫고 세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하나둘 문을 닫으며 빈 가게를 <우리글방>과 <대우서점>이 물려받아 가게를 넓혔으니, 책방 숫자는 줄었지만 책방골목 살림살이는 줄지 않았습니다. 올 2010년 가을에는 보수동 한켠에 '헌책방골목 빌딩'까지 우람하게 하나 서는 한편, 시와 구에서 여러모로 책방골목 살리기를 북돋운다고 하니, 어쩌면 이제부터는 이곳 보수동에 새 헌책방이 하나둘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 책방골목 잔치를 열 무렵처럼 쉰여섯 군데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더 늘 수 있겠지요. 보수동 책방골목이 한결 북적거릴 수 있는 한편, 부산 시내 곳곳에 크고작은 헌책방이 하나둘 늘 수 있을 테고요.
헌책방은 이 나라 어디에나 있습니다.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습니다. 다만, 도시에 몰려 있고 시골에는 몹시 드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충청북도 충주시에는 시내에 한 곳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 살아가는 산골집하고 시내는 몹시 멉니다. 버스로 거의 한 시간 가까운 길이며, 시내로 오가는 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대 있어, 이 시골버스를 잡아타기 퍽 어렵습니다. 차라리 서울로 시외버스를 타고 다닐 때에 품이나 시간을 줄이면서 더 많은 책을 볼 만하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식구 살림집과 맞닿은 음성군 읍내 두 곳(음성읍과 금왕읍)에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문방구를 조금 더 크게 하는 새책방은 있으나 인문책을 골고루 살필 만한 책방은 못 됩니다. 먹고 마시는 집은 곳곳에 많아도, 읽고 삭이는 문화나눔터는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아마 어느 시나 군에 가도 비슷할 테고, 청주와 진주와 전주와 춘천과 수원과 부천쯤을 빼면 헌책방 나들이를 해 보기조차 힘들다고 느낍니다.
작은도시 가운데 헌책방이 있는 곳이 있고, 같은 서울에서든 또 시골에서든 내 살림집에서 제법 나가야 헌책방을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작은도시에서는 헌책방 살림을 잇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큰도시 사람들이라 해서 책을 더 많이 읽거나 책방마실을 더욱 즐기지 않습니다만, 어찌 되든 사람 숫자가 많습니다. 작은도시 사람들도 책을 사랑하며 책방마실을 즐기지만, 작은도시 작은책방이 살림을 꾸준하게 이을 만큼 책손이 많지는 않아요.
생각해 보면, 사람 숫자가 적더라도 얼마든지 책마을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시나 군 사람 숫자가 10만이건 5만이건 얼마든지 새책방과 헌책방이 골고루 깃들 만합니다. 5만이 아닌 1만이라 하더라도 책방은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마을사람 스스로 도시바라기를 하지 않는 가운데, 저마다 주어진 내 삶을 한결 알뜰히 아끼거나 사랑할 때에 시골마을 책방이 뿌리를 내립니다. 텔레비전을 사귀지 않고 자동차를 사랑하지 않을 때에 차츰차츰 작은도시 책방이 자리를 잡습니다.
몇 천이나 몇 만이 들어설 극장이나 경기장이 있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천 사람이나 이삼백 사람이 들어설 만한 작은 극장이나 경기장으로도 즐겁습니다. 다문 백이나 이백 사람 앉으며 영화나 연극을 즐길 자리여도 넉넉합니다. 시골학교마다 학교 앞에 책방이 한 군데씩 있으면서, 이 시골학교 교사와 학생들 누구나 책방마실을 즐기면 됩니다. 누구보다 교장과 교감 자리에 계신 분들이 책을 즐기고, 교사들 누구나 책을 즐기는 가운데, 대학입시보다 내 삶을 즐기며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시골마을 책방이 살아납니다. 온 나라가 대학입시에 휘둘리거나 목매달 때에는 시골마을뿐 아니라 큰도시 책방마저 아슬아슬합니다. 온 나라가 더 빠른 차와 기차와 버스와 비행기에 얽매일 때에는 큰도시 큰책방조차 흔들립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더 빠른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로 오가야만 하지 않습니다. 30분 더디 가면 어떻습니까. 한두 시간 천천히 오가면 어떠한가요. 내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리면서, 내 삶을 넉넉히 추스를 수 있어야 바야흐로 책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책을 읽어야 애써 읽은 책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내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책읽기가 되어야 꾸준히 책방마실을 합니다. 꾸준히 책방마실을 하는 가운데 내 넋을 더욱 아름다이 여미고, 내 넋을 더욱 아름다이 여미는 동안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경제와 과학과 철학과 문학 모두 슬기로우며 참답게 북돋울 기운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