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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척
이처럼 구구절절한 김훈 중위에 대한 야속한 난도질은 지난 12년간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 12년간 김훈 중위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곁에서 지켜본 제 가슴팍을 다 적시고도 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9년 1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특별합동조사단이 주최한 김훈 중위 사인 규명을 위한 '법의학적 공개토론회'장에서 어머니가 외친 그 울부짖음은 아직도 제 귀를 쟁쟁하게 울립니다.
어렵게 마련한 진상규명의 기회에 아들 김훈의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던 어머니는 그날, 참담하게 무너집니다. 국방부가 자살 소견을 가진 국내 법의학자 등 7명과 유족이 추천한 단 한 명의 타살 소견 법의학자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조직, 이 자리에서 법의학 역사상 다시 보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표결 방식으로 '자살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에 총을 쏴서 실험해 주십시오. 나는 내 몸을 자식에게 바치겠습니다."자식을 잃은 어미가 토론회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며 울부짖던 그 절규에 저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은, 당시 자살이라며 결론 내린 국내 법의학자라는 사람들은 권총 사망사건을 단 한 건도 다뤄보지 못한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비전문가들이 내린 이날의 표결 결과를 국방부는 오늘까지도 김훈 중위에 대한 '대단한 자살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국방부가 오는 23일(화),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또다시 육군의 재심의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육사 총동창회(회장 오영우 육군 예비역 대장)가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국가기관 세 곳의 조사 결과에서 김훈의 사인이 자살은 아니라고 결론내리자 이를 근거로 김훈의 순직 처리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재심의 결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을 김훈 중위 아버지에게 알려준 날이 11월 9일입니다. 발표 전까지 이런저런 사실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결론을 내려 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23일 개최될 재심의는 그야말로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너무나 친절한 국방부를 탓하면 안될까요? 공식적인 결론 이전에 미리 찾아와 자살 처리를 귀띔하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국방부 처사에 아버지의 가슴은 또다시 찢어집니다.
12년 전 그때나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어쩌면 이리도 국방부는 변한 것이 없을까요. 정권이 세 번 바뀌고 국방부 사람들도 바뀌었는데 정말이지 변한 것이 너무 없는 국방부의 사건 처리 방식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물론 이 사건을 처리한 당시 주요 인사들은 지금 더 높은 직급의 책임자로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김훈 중위 사건이 '사실 관계보다는 꼭 자살이어야 한다는 억지가 계속되는 이유'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소한 잘못은 있으나, 결론은 문제 없다는 국방부무 자르듯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자살의 입증 책임은 온전하게 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년 동안 국방부와 김훈 중위 사인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싸워오면서 국방부의 참으로 이상한 고집 때문에 난감했습니다.
도대체 국방부가 김훈 중위에 대해 자살이라고 고집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국방부의 1, 2차에 걸친 부실한 군 수사는 결국 특조단의 출범을 야기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조단이 구성되어 재조사하게된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 규명을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기존 결론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시 눈물을 목격했다는 엉터리 진술 확보와 인근 부대 경비병에게 총성을 듣지 못했다는 '총성 미청취 각서'를 쓰도록 요구하는 등의 진실 은폐 의혹입니다. 군 의문사위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같은 특조단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과정상에서 소소한 잘못은 있으나 자살이라는 기존 수사 결과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유족은 군 수사관을 포함하여 경찰과 검찰, 그리고 민간 전문가까지 모두 참여한 가운데 내려진 결론인 군 의문사위의 '진상규명 불능'에 대해 국방부가 수용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강하게 항의합니다.
늙은 부모는 얼마나 더 고통을 겪어야 할까요대를 이어 군을, 그리고 조국을 사랑했던 김척 예비역 중장의 가족은 이제 더 이상 '자랑스러운 군인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버린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국방부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겁니다.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역 장성의 자식이라서 다른 일반 사병과 다르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서 억울하지 않게 대해 달라는 것이 지난 12년간 김훈 중위 가족의 한결같은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기대는 늘 무너졌습니다. 합리적인 토론장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내린 결론은 군사작전의 그것처럼 늘 지켜야 하는 성역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보낸 12년 동안 그 가족들의 눈물은 법정에, 부대에, 그리고 낯선 거리 곳곳에 무수히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23일, 육군이 김훈 중위 사망 재심의 결과라며 또다시 내릴 '자살 처리'에 그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의 입술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20대 청춘부터 50대 후반까지 월남 파병 등 전쟁터와 야전 사령관으로 30년이 넘도록 충성했던 이 나라와 국방부를 상대로 그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전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7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50대 후반의 신사에서 이제는 늙은 아버지가 되어 제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 충성하던 늙은 노병을 상대하는 대한민국 국방부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의 이익으로 하라'는 법 격언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명확하게 자살을 입증하지 못했고 국가기관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김훈 중위의 사인은 결코 자살로 예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벽제의 군 영현실에 12년째 방치된 고 김훈 중위와 그 늙은 부모가 이 모진 고통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지 제 가슴은 다시 먹먹해집니다.
김훈 중위가 묻습니다. '저는 정말 어떻게 죽은 것인가요?' 23일, 국방부가 또 다시 답한다고 합니다. '너는 자살이라고….' 그러면 또 다시 우리가 묻습니다. 정말 국방부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이냐고. 이렇게 우리는 또다시 싸울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천천히, 또박 또박, 그리고 집요하게. 아버지 김척과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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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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