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인권위 상임위원에 임명된 김영혜 변호사
연합뉴스
김영혜 상임위원이 대표를 맡았던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이나 여타 뉴라이트 단체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인권위를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인권위 역할에 대한 그들의 오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의 비판은 '인권위가 헌법질서를 무시하는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권 거버넌스에서 인권위의 역할은 다른 국가기관이 국제인권규범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할 때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인권위가 사법부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것은 '월권'이 아니라 인권위 본연의 임무이다.
주요 인권현안에 대해 인권위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G20 경호 특별법, 집회와 시위의 자유 등 주요 인권 관련 쟁점에 대해 국가기구는 아무래도 국가안보나 공공안전 등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인권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망각되기 쉬운 인권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국가기관에 경고하는 기관이 바로 인권위이다.
인권위가 여타 국가기관과 입장이 같다면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 인권위가 다른 견해를 표명한다고 해서 국정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인권위가 권고를 하고 정부가 이것을 검토하면서 정책이 재조정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런 절차 없이 정부가 국정운영을 밀어붙인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권위가 이런 역할을 하려면, 인권위는 공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권의 '편'에 서야 한다. G20 경호보다는 그에 따라 침해되는 표현의 자유를 살피고, 전교조 비판보다는 교사의 결사의 자유를, 국방보다는 병역 거부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인권위의 임무다. 이것을 '편향적'이라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권위 본연의 임무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인권위는 원래 그렇게 '인권편향적인' 역할을 하라고 만든 국가기구이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인권단체를 상대하기도 골치 아픈데, '국가기구'인 인권위까지 이런 일에 한 몫 한다는 게 영 못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면, 정부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선진국들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인권감시 시스템을 짜놓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인권위의 문제를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보면서, 보수인사를 임명해서 이 정국을 돌파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내 시민사회의 반발은 '무시'로 돌파한다고 치더라도, 앞으로 계속될 국제기구와 국제시민사회의 비난은 어떻게 감당할 심산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세계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하긴 세계적인 모범으로 칭송 받던 한국의 인권위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몰락한 것이 그네들 눈에는 참 신기하게 보일 것이다. 국제사회에 가서도 '모든 것은 오해일 뿐'이라고 강변할 생각인가? 3명의 인권위원, 15명의 전직 인권위원, 19명의 전직 인권위 직원, 61명의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 600여개의 시민단체, 300여명의 법학자/변호사들이 집단으로 '오해'하고 있을 뿐이라고?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인권위를 인권위답게 만드는 것이다. 보수인사라서 무조건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일류선진국가가 되려면 '인권'도 중요하다며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보수건 진보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인물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상황이 열악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관에서도 낙마한 인사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하는 그 안이한 현실인식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조차 헷갈린다.
다행히 인권위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다. 현병철 위원장은 사퇴하고, 한나라당은 홍진표 이사에 대한 추천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인사가 다시 임명된다면, 그래도 인권위에 희망은 남아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다.
덧붙이는 글 | 홍성수님은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숙명여대 법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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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활동가 홍진표 임명,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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