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리지스트릿우리의 대학로와 비슷하다는 '꼴리지스트릿(College street)'.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김솔미
여행 후반부에 도착한 콜카타. 상공업이 번성하여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전통을 고이 간직한 마운트아부와 전혀 다른 세계. 매번 새로운 도시를 만나면 여행지의 극히 일부분만을 볼 뿐인 한낱 여행자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나라의 전체를 아는 양 얼마나 떠들어 댔던가.
우리의 대학로와 비슷하다는 '꼴리지스트릿(College street)'.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한낮의 공원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나눈다. 그 곳에서 오르차에서 만난 스무 살의 인도인 청년을 떠올렸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그는 마침 휴일이라 시골집에 왔다가 나를 만난 거였다. 나와 같은 대학생,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물었다.
"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 난 연애를 하지 않을 거예요.""왜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겠죠?""….""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결혼도 하지 않을 건가요?""언젠가는 하겠죠. 부모님이 맺어주시는 사람과."잠시 정적. 결국 참았던 한 마디를 하고 만다.
"당신들의 전통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나요?""없어요, 하지만…."질문이 무례했던 것 같아 화제를 돌리려고 했으나, 청년은 계속해서 얘기했다.
"나도 알고 있어요. 당신들은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요. 우리도 점점 변하고 있고, 언젠가는 당신들처럼 되겠죠."이렇게 말하는 그의 쓸쓸한 눈빛을 보며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게 확인사살까지 하고야 말았다.
"당신도 우리처럼 되기를 원하나요?""…언젠가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수줍게 털어놓는 스무 살의 고백에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그러면서도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떳떳하게 보이고자 하는 청년의 우직함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여행자의 감상은 지독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아샤의 담담한 표정과 청년의 수줍은 고백을 다시 떠올리며, 제 나라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 속에 포함된 낭만적인 의미- 이를 테면 '소중한 것'이라거나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은 -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곳이 상상 속의 그림과 부합하기를 바라는 관찰자의 시선일 뿐,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체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숭고함과 마주할 때마다 변치 않기를 바라곤 했다. 옛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때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곤 했다. 물론,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박아놓고 위선을 떠는 고약한 취향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소위 경제 발전이란 명목으로 기를 쓰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다가 문득 속죄의 의식처럼 전혀 발전이 안 된 시골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스럽고도 도시 중심적인 사고인가.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中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찾아 읽게 된 수필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대로, 보여 지는 것 밖에는 볼 수 없는 여행자의 감상은 지독한 이기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