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랑채
최지혜
조심스럽게 들어선 사랑채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라 그런지 조금은 편안하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기와를 얹는, 흔히 생각하는 한옥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 특색있다. 선병국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H자형의 구조와 시멘트와 벽돌을 사용하는 등 그 시대 한옥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니 또다른 안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안채에서 마주친 분은 작은며느리, 사랑채에 계신 분은 큰며느리라고 한다.
사랑채는 현재 도솔천이라는 찻집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따뜻한 방안에서 향기로운 차 한잔 내어놓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한옥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아쉽지만 이미 방안을 점령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있어 앞마당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잠시 바람을 느끼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사랑채와 마주보고 있는 중문을 나와 오랜 세월 그곳을 감싸고 있었을 담쟁이 넝쿨에 시선을 고정하며 발길을 틀다보니 불청객의 서러움을 단번에 날려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장독대!!
안채 앞에서 봤던 장독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규모다. 보물이라도 찾은 것 마냥 신이 난다. 장독대 앞 절구통에 올라서서 풀지 못한 예술의 혼을 맘껏 발산해본다.
'이럴거면 괜히 안채 앞에서 기웃거렸잖아?!'그런데 신기한 모습을 포착했다. 얼핏 보기에는 다 똑같은 단지들이 자세히 보니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전라도 단지, 경상도 단지, 평안도 단지, 충청도 단지 등 선두에 각 지역별 푯말을 세워 가지런히 줄을 세워놓았다. 따뜻한 남쪽 지방일수록 직사광선을 최대한 차단시키기 위해 입구가 좁고, 추운 위쪽 지방일수록 입구가 큰 것이 특징이다.
다 같은 줄만 알았던 장독들도 저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생활용품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여행의 순간 순간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행복이 곱절이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