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승부사 유희경이 내게 던진 질문

등록 2010.11.15 14:26수정 2010.11.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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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가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나는 늘 파리를 1순위로 답했다. 2003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에서 받은 충격과 전율은 그만큼 신선했다. 낭만과 자유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외관과 깨끗한 거리, 귀한 예술품이 넘치는 박물관, 멋과 맛이 어우러진 본향을 꿈꾸었는데, 내 기대는 첫 날부터 어깃장이 났다. 지하철 외벽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휘날리고, 스산한 겨울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몽마르트 언덕에는 실로 엮은 팔찌를 사라며, 온갖 한국말을 늘어놓는 장사꾼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파리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은 사람들의 여유로운 태도 때문이었다.


어느 공원에서 마주친 여성은 참 특이했다. 한 겨울에 긴 목도리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짧은 팬츠를 입고 달리기를 하는데, 우리만 눈이 동그래져 시선으로 여자를 끝까지 뒤쫓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힐끗 쳐다볼 뿐, 누구나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듯 이내 자기들 할 일에 집중했다.

파리를 왜 패션의 도시라고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유럽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멀리서 옷만 보고도 한국인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당시 유행하고 있는 옷들을 동일하게 입고 있는데, 파리 사람들은 같은 패션의 옷을 입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제각각이었다. 제 멋에 산다는 말은 파리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장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세느강의 유람선 바또무슈를 탔을 때, 우리는 체르노빌에서 온 러시아인들과 섞여 뱃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실내에서 밋밋하게(?) 조신히 앉아있을 수 없다는 혈기가 발동했다.

어느 아저씨가 러시아 전통 음식이라며 오이절임을 선뜻 먹어보라고 권하자, 망설임 없이 넙죽 받아먹은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러시아 아저씨의 선창으로 세느강의 다리들을 지날 때마다 함께 소리를 질렀는데, 파리에서의 자유로움은 그날 절정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파리가 아니면 가능할까 싶었다. 그 때, 나는 관용과 자유, 배려와 어울림은 파리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파리 사람들이니까, 자유와 혁명을 경험했던 그들이 만든 파리니까.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더라도, 실상은 사회의 구조 및 한계의 자장, 심지어는 무의식까지 언어로 구조화하고 있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이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조선의 승부사들>에서 만난 유희경의 일대기는 그 생각에 균열을 냈다. 조선시대, 유희경은 천민으로 태어났는데도, 상례에 대한 예학에서 최고가 됐다. 남언경을 만난 후 오히려 양반에게 상례의 도를 가르치는 전문가가 된 것도 그렇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 재정을 모아 전쟁을 충당했다는 활약. 거기에  실력과 더불어 겸손함을 갖춰 늘 스스로를 낮췄다는 평가를 읽는데, 가슴으로 뭔가 환한 빛이 들어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더구나 매창의 연인이 유희경이었다니, 더 놀랐다. 시로써 사랑을 노래한 연인들의 마음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화우 흣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라가락 하돗다/  애절함의 시는,
낭자 집은 낭주에/나의 집은 한양에/그리는데 볼 수는 없어서/오동잎 빗소리에 애가 끊기네/ 로 화답됐다.  

가끔은 내가 선 현실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구조적 모순이 철저하게 자유와 화평을 유린하고 있다고 믿을 때, 나의 죄과는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유희경은 혁명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신분제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살아냈다. 사회의 구조에 갇혔으면서도, 온전하게 자기 갈 길 다 간 그는, 닫힌 사회라는 조선의 자유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줬다. 유희경이니까, 유희경이라면 어느 시대든, 어느 환경에서든 유희경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변한다면, 나는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예전에는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했는데, 요즘에는 그 확신이 점점 엷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자유나 행복은 구조와 환경을 걷어내도  실증될 수 있어야 진짜 자유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진짜 김지학다운 게 뭔지, 김지학스러운 게 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하는 까닭. 가을 날, 유희경이 집요하게 묻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파리 #자유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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