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옥병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상임운영위원장.
권우성
'친환경 무상급식은 이제 실행만 남은 수명 다한 의제 아니야?'
6.2지방선거 이후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른바 '식판 전쟁'은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끝난 것으로 여겼다.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다짐했던 이들이 자치단체장, 교육감으로 대거 당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옥병 (52)'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반문한다.
"지방선거 한 번 이겼다고 친환경 무상급식이 저절로 될까요? 무상급식 의제를 선점 못해 선거에서 패한 정부와 여당이 총선과 대선 앞두고 가만히 지켜만 볼까요? 곧 더 큰 '식판 전쟁'이 벌어집니다. 아이들 밥상은 언제든 엎어질 수 있습니다."최근 흐름을 보면 괜한 경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서울중앙지검은 8일 배옥병 위원장을 기소했다. 검찰이 주장한 죄명은 공직선거법 위반.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의 한 대목을 보자.
"피고인(배 위원장)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가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쟁점으로 부각되자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민주당 등 야5당과 연계해 정책협약을 해 지지의사를 표시했다.(중략) 피고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후보자들에 대하여는 낙선을 목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등의 선거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오세훈·김문수, 무상급식 예산 '0원' 배정... "더 큰 식판 전쟁 온다"배 위원장은 15년 동안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을 해왔다. 선거 때마다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이 여러 정당과 후보자들의 공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검찰은 유독 올해 지방선거만 문제 삼으며 '친환경 무상급식 확산 및 정착 운동'을 '한나라당 후보자 낙선운동'으로 규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내년 예산에서 학기 중 무상급식 예산으로 '0원'을 배정했다. 두 사람은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이다. 여기에 김황식 국무총리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상급식을 시킬 필요가 없다"며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여당의 잠재적 대권주자와 정부가 공동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배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친환경 무상급식에 맞서 전면전으로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보편적 복지 의제를 꺾으려는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약 절반이 살고 있는 서울과 경기도가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으로 '0원'을 배정하고, 대표적인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가가 검찰에 기소된 상황. 아이들 밥상은 무사할까, 아니면 엎어질까?
기소된 당사자로 오는 19일 법정에 서야 하는 배옥병 위원장에게 직접 물어봤다. 친환경 무상급식의 미래는 과연 안녕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래는 11일 서울 영등포의 한 찻집에서 배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검찰의 기소는 예상했나. "예상 못했다. 내가 속한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단체는 2002년에 만들어졌다. 학부모로서는 1995년에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동안 총선, 대선, 지방선거 때마다 여러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공약 제안을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 문제로 기소되다니, 상상도 못했다."
- 지금 와서 왜 갑자기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으로 기소됐다고 보나. "이 문제로 여당이 지난 6.2지방선거에서 패하지 않았나.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게 아닐까? 검찰이 기소 사실을 발표한 9일도 참 절묘하다. 그날 서울시교육감, 여러 구청장 등이 참여하는 '2011 친환경 무상급식 서울 공동협약' 행사가 열렸다. 그날 부장검사가 직접 브리핑까지 하며 기소 이유를 설명했는데, 참 황당하다."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이 선거법 위반?"- 죄목은 선거법 위반이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우리가 특정 정당을 지지했나? 아니다. 정책을 지지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한나라당 기초단체장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한 사례도 많다. 또 우리는 무상급식을 두고 '사회주의 정책',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 사람들에게 반론을 폈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했으면 자신들의 정책을 전환해야지, 왜 나와 같은 운동가를 탄압하나.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은 급식을 먹고 건강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면서 나를 큰 인물 취급하고 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웃음)"
-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학기 중 무상급식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지 말자는 분명한 뜻을 밝힌 것 같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정부와 여당은 친환경 무상급식을 엎어 버리려 하고 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3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공개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비난했다.
특히 오 시장은 '야당의 포퓰리즘적 복지공세에 맞서야 한다, 앞으로의 복지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자립형 복지, 되도록 수혜대상을 넓히는 보편 복지, 국가의 예산뿐만 아니라 가진 자들의 나눔과 기부를 통해 하는 참여형 복지가 기본적 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복지를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시혜쯤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기부와 나눔을 하고 싶다면 세금 더 내면 된다. 그런 건 반대하면서, 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한다는 식으로 생색내기 하려고 하나. 그것도 아이들에게 상처 주면서 말이다. 오 시장의 복지정책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다니, 정말 실망스럽다."
"부자들의 기부와 나눔으로 복지 하자고? 세금이나 더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