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버렸다, 너무 배고파서

사흘 단식 일지③

등록 2010.11.12 10:11수정 2010.11.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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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꺼번에 쓴 글이 아니고 매일매일 일기처럼 쓴 글이라서 '오늘'같은 표현이 등장하나,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단식 첫날(몸무게: 61kg)

 

엄마가 단식 첫날에는 무염일, 즉 소금을 먹지 말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소금을 먹으면 그나마 기운이 좀 날 텐데……. 오늘(감식 첫날) 점심때까지는 배고픔이 덜 하였으나, 오후에 청소를 하면서부터 엄청난 배고픔이 느껴졌다.

 

우리 집은 무지무지 넓다. 옛날 폐교를 임대하여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주하는 식구는 나와 엄마와 몇몇 사람들뿐인데, 하필 이날은 우리밖에 없어서 내가 드넓은 본관을 다 청소해야 했다.

 

너무 피곤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엄마가 내가 귀찮아하는 걸 알았는지, 일을 멈추고, 나를 도와서 청소를 해 주었다. 엄마가 도와줘서 청소가 쉽고 재밌게 끝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청소를 하는데 쓰러질 것 같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저녁에 구석에 찌개를 보는데 거기 있는 볶은 김치가 너무나 맛있어보였다. 아, 그 김치의 짠 맛과, 고추장의 달콤함이 그리운 것이 처음이었다. 내 생각에 단식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먹을 걸 귀하게 여기고,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역할인 것 같다.

 

단식 둘째 날(몸무게: 59kg)

 

나는 단식을 하면 시간이 무지무지 길게 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시간이 되게 금방 갔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간이 너무 길 것 같았다. 평소에 한 달 아니면 두 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치킨, 피자, 감자튀김, 호두과자, 델리만쥬, 스파게티, 주스와 음료수, 김치, 참치조림, 엄마 표 쿠키, 그리고 하얀 쌀밥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진짜 아까(저녁)는 이불에서 울기도 했다. 너무나 먹을 게 그리워서였다. 그러나 지금 밥을 먹으면, 이틀 동안 고생한 것이 없어지고, 다시 사흘을 채우려면, 이틀을 또 굶어야하므로 그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참기로 했다. 너무너무 배고프고 힘들다. 아, 쌀밥의 향기.

 

저녁에 '뒤통수 냉각법'을 하는데 머리와 그릇에서 물이 새서 방바닥을 강바닥으로 만들어 놓았다. 뒤통수 냉각법을 하니 확실히 머리가 띵~ 한 게 기분이 좋고, 온 몸에 자극이 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식 셋째 날(몸무게: 58.5kg)

 

오늘은 단식 3일째이다. 단식은 사흘째가 제일 힘들고 어렵다고 했는데, 그럭저럭 매우 잘 버텨낸 듯하다. 아침에 5년 만에 처음으로 바지에 설사가 나와서 팬티와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씻은 다음 수건을 둘둘 말아서 그대로 장판이 있는 방에서 잤다. 그래도 조금 자니까 오전에는 배고픔이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점심시간이 없긴 하지만)이후에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는데, 먼저 푼 국어문제집에서 무슨 문제와 해결의 짜임에 글에 편식의 문제 어쩌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치킨과 피자를 너무 먹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다시 음식 생각이 났다. 거기다가 사회 문제집에서는 우리나라의 알릴 음식-불고기라는 주제가 나와서 홍보하는 얘기가 나와서 더욱더 나를 서글프게 하였다. 평소에 한 번도 안 나오던 음식 이야기가 왜 단식기간에 나오는지…….

 

이 사람들이 나를 놀리려고 다 짜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국어에서 6학년을 졸업하니 어떤지 말하고 6년 동안의 추억을 쓰라는 문제에서 나는 하필 내가 학교를 한 달 갔을 때 발표회에서 먹었던 치킨 볼이 생각났다. 아, 그 쫄깃함…….

 

조금 있다가 4시쯤에 신문을 보고 있는데 우리 목수샘이 와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와, 그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매운 자극적인 맛……. 더군다나 평소에 잘 안 먹으니 너무나 그리웠다. 단식 끝나고 회복식도 끝나면 꼭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이다.

 

저녁에는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치는데 너무나 향이 좋았다. 엄마는 단식을 하면서도 함께 사는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맛도 안 본다. 그런데 간이 맞다고 한다. 그동안 식구들이 다 단식할 때도 엄마는 내 밥을 챙겨주셨는데,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음식을 하면서, 그 냄새를 맡고도 배가 고픈데 참을 수가 있을까? 아, 빨리 회복식을 하고 음식을 먹어야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사흘을 참았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나, 이제 단식도 끝냈는데…….

2010.11.12 10:11ⓒ 2010 OhmyNews
#단식 #감식 #회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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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일하는 일차의료, 응급의료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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