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임기 중 사퇴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가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장향숙 상임위원이 현 위원장에게 인권위 운영에 대해 항의한 뒤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유성호
인권위원장은 됐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인권에 대한 '무지'가 인권위 운영에 걸림돌이 됐다. 현 위원장이 임명되기 전만 해도 한국이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유엔에서 인권을 논의하는 삼대 축 중 하나) 의장국을 수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해 7월 의장국 후보 출마 자체를 포기했다. 의장국이 될 경우 의장으로서 현 위원장이 해야 할 세계 인권에 대한 역할이 막중한데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스스로 '항복' 선언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무지'는 엉뚱하게도 진보와 보수의 대동단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취임 직후,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처음에는 폐지 의견을 밝혔다가 이후 이를 뒤집었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소신도 없다"며 진보·보수 시민단체 모두로부터 퇴진을 요구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인권위가 행정부에 속한다"고 말해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무자격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진 것은 물론이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현 위원장이 취임 직후 '인권을 잘 모른다'고 하기에 겸손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뭘 모르더라"며 "모르는 게 죄가 될 수는 없지만, 모르는 걸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인권 감수성·리더십 부재... "제 점수는요, 빵점입니다" 인권위원장의 수장답지 않은 언행도 구설에 올랐다. 지난 7월 사법연수생들과 대화를 하며 "깜둥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 9일 열린 인권위 국감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으나 현 위원장은 "그런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고 발뺌했다.
1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경숙 전 위원은 "내가 듣기론, 현 위원장이 '깜둥이들이 너무 많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런데도 현 위원장은 국감장에서 잘 기억이 안 난다며 왜곡시켜서 답변했다"고 비난했다.
국감장에서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무'는 소통이다. 국감장에서 "전직 인권위원들, 수백 개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 인권위 내부 직원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현 위원장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질문에는 "내가 느끼고 있다"며 응수했다. 아무리 반대 목소리가 들끓어도, 나를 지지해 주는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있으니 괜찮다는 태도다.
"떳떳하다"는 현 위원장의 당당함에 열띤 호응(?)이 줄 잇고 있다. 국감 이후 "현 위원장, 잘 봤고요. 제 점수는 '0점'입니다"라는 조롱섞인 손 팻말이 기자회견에 등장하고 있는 것.
듣기 싫은 소리에는 귀를 막아버리는 '소통 없음'은 리더십의 부재를 낳았다. 조국 전 인권위 비상임위원은 1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위원장과 성향이 다른 상임위원들은 항상 있어 왔지만 상임위원들이 사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반대 의견도 수렴해서 장관급 수장으로서 인권위를 끌고 나가야 하는데 이런 지도력이 현 위원장에게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정권의 이해와 연결되는 사건들 부결, MB 향한 충성 서약" 다 없는 현 위원장에게 하나 있는 것은 바로 정권을 향한 헌신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회적으로 인권위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현 위원장이 임명 이후 부결된 사건들 'PD수첩 사건, 이른바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들은 정권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이라며 "이 사건들에 대한 논의가 부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정권의 심기,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충성 서약"이라고 꼬집었다. 2009년, 현 위원장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용산참사 관련 인권위 의견 표명을 반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권에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려 애쓴 현 위원장은 내정 당시 "(현 내정자는) 학장·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여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 인권위 조직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청와대의 바람을 실현하는 데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경숙 전 상임위원은 "없던 조항을 만들어서 정책교육국장을 임명하고, 외부인사 영입이 일반적이었던 사무총장직을 내부 승진으로 채우는 등 위원장이 인사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현재 인권위의 고위직은 현 위원장의 라인으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 승진을 위해서 혹은 찍히지 않기 위해서 현 위원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국정감사만 지나면 위기 넘길 수 있다" 간부회의서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