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권우성
- 출근할 곳이 없는데, 요즘 일상은 어떤지. "내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역사문제연구소'에 나가 지인들과 소통하고,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자료 정리를 돕고 책을 읽기도 하고 연구 공동체인 '수유+너머'에서 하는 일본 잡지 읽기 세미나에서 자료 번역을 하면서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 갑자기 일터를 잃는 경우 병을 앓는 경우를 많이 봤다. 건강은 어떤지. "사건 초기에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알고 지내는 의사가 '공황장애 증상이 보이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땐 많이 우울했고, 심해지면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런 저에 대해 주변에서 꽤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체중도 10kg 이상 줄고 식욕도 잃어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정신적 형평도 많이 회복했다. 주변에서 걷기를 많이 권해 요즘도 하루 한 시간 정도 걸으면서 육체적 건강도 회복하고 있다."
- 지난달 4일 총리실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온종일 혼자였던 것을 봤다. 일상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권력의 사찰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평소 알고 지낸 한 분은, 연 매출액 30억 정도의 중소기업 경영자이신데, 지난 20년 동안 회사의 사소한 문제까지 다 내 의견을 구하고 집안 대소사까지 상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사건 이후에는 내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회관계가 파탄이 났다.
그러나 날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 검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찾아가서 뵙고 싶은데, 내가 가는 것이 어떻게 해석될까 이런 생각 때문에 갈 수 없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렇지만 지하철 같은 곳에서 처음 보는 내게 '힘내라', '잘 견디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도 심심찮게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런 분들의 말 한마디가 정말 도움이 된다. 얼마 전에 역사문제연구소의 주변 분들이 나를 위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주셔서 목이 메었던 적도 있다. 전혀 모르는 분들이지만 어떤 한의사 분은 약을 지어서 보냈고, 어떤 분은 귀농한 뒤 처음 농사지은 사과를 보내시기도 하고, 감을 보낸 분들도 있다.
불법사찰을 당한 나를 두려워하고 기피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내 고통과 상처를 나누고 위로하려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인생이 그렇게 삭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일본에서 주고받은 이메일, 총리실에 다 보고돼"- 오는 15일 불법사찰 실무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다. 검찰에 기소된 이인규씨 등은 공판에서 '국민은행이 공직윤리실의 내사를 이야기하면서 김종익 대표 사임과 지분 정리를 강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폈는데, 국민은행이 그들의 주장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이인규씨측 변호인의 전략의 초점은 총리실 사찰 행위자들의 강요에 의해 대표직 사임이나 지분 이전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은행이나, 나 대신 회사의 새로운 대표를 맡은 A씨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임하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하는 게 이인규씨측 변론 요지다. 재판에서 다투고 있는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국민은행에서 나에게 사임을 강요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새롭게 회사 대표를 맡은 A씨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지분 이전을 빨리 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계속 보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사용한 이메일 계정이 일본인 지인의 부인이 쓰는 이메일이었는데, 사건 초기에는 소송을 건다든지 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인이 내가 보내고 받은 이메일을 무심코 지워버렸다. 소송을 진행하려고 하니 이 이메일이 매우 중요한 자료인데, 자료가 없어져 안타까웠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보니, 나 대신 대표가 된 A씨가 내게 보낸 메일과 내가 A씨에게 보낸 메일들이 다 자료로 제출돼 있어서 놀랐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을 알게 됐는데, A씨에게 보냈던 이메일과 A씨가 내게 보냈던 이메일이 모두 총리실에 보고돼 왔다는 사실이다.
A씨가 지분 이전 얘길 계속한 것에 대해 A씨가 나하고 워낙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 1심 재판에서 이인규씨측 변호사가 A씨에게 나(김종익)하고 적대적 관계인지 물었다. A씨는 '일이 있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지냈는데 동작경찰서에서 (김종익씨가) 1차 조사를 받고 혐의 없음으로 나오고 나서 김종익씨가 회사로 돌아온다고 얘길 한 이후론 전화도 않고 연락도 않고 지내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 얘길 듣고 많은 의혹이 풀렸다. 경찰서에서 조사 받는 과정에서나 'PD수첩'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제가 회사 쪽에 자료 요청을 했는데 전혀 협조가 안 됐다. 직원들이 전화도 못 받게 하고. 왜 이럴까 하고 힘들어 했는데, 법정에서 그 얘길 듣고 나니 의혹이 풀리고 제가 회사로 복귀한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이고 자기가 회사를 뺏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 민간인 불법사찰 실무자의 수첩에서 'BH(청와대) 하명사건'이라는 메모가 나오고 대포폰이 언급되는 등 청와대의 '윗선 개입' 관련 증거가 나오고 있지만, 검찰은 애써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내가 해석하고 의견을 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치적 해석이 필요한 문제에 의견을 낼 경우, 자칫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지닌 본질에 정치색이 덧칠돼 이전투구 형태로 변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내 입장에선 국가권력이 평범한 한 시민의 삶에 가한 폭력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이 있으면 법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상식을 믿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에 대해 국방이나 조세와 같은 의무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 이런 상식적 절차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은 결국 한국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민주적 역량이 부족하거나 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개인을 넘어 정의와 민주주의의 지표가 되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