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낑낑아무리 엔돌핀의 힘을 빌린다지만, 무게는 만만찮았다. 아내와 내가 낑낑대며 시골 집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모든 사진을 우리 집 막둥이가 찍었다.
송상호
실망할 아내에게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나의 굳은 의지가 발동했다. "얼른 가서 미션을 수행해야죠"라 했더니 제수씨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 빙그레 웃는다.
중고매장에 도착했다. 어떤 것을 살까. 몇 대가 있었다. 나는 그 중 제일 크고 제일 최신형에 눈이 갔다. 크다고 해봐야 200L 정도. 가격대는 40만원.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아내와 같이 왔으면 더 싼 걸로 골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동안의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려는 나의 마음은 그것을 낙점하고 있었다.
카드를 긁었다. 8개월 할부로. 그것도 카드라 부가가치세가 붙어서 43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긁었다. 까짓 거 8개월 동안 그 정도 가격이라면 끄떡없다.
중고라 김치 통은 따로 구입해야 한단다. 김치냉장고 대리점 가서 사면 비싸니까 그릇 가게에 가서 사라는 조언을 해줬다. 조언대로 당장 그릇 가게를 들렀다. 한 통에 9천 원 씩. 모두 8통. 통 값만 해도 72000원. 거의 50만원 돈이 들은 셈이다.
더아모 리무진 트렁크엔 사돈댁에서 주신 김장거리와 좌석시트 위엔 김치냉장고와 김치 통을 실고 집으로 향했다. 마치 큰 전쟁을 이긴 개선장군처럼. 마치 만선한 어부처럼. 중간에 퇴근하는 아내를 태웠다.
조수석에 아내가 타자마자 나는 엄지손가락을 뒤로 가리키며
"자 보라고. 뒤에 뭐가 실려 있는지.""어머, 김치냉장고네. 이거 당신이 왜 직접 가져 왔수.""그게 아니고 인터넷에서 시킨 건 취소 됐다네. 그래서 중고매장서 직접 사왔소"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장 아내가 되묻는다.
"얼마주고?"순간 뜨끔했다. 너무 비싸게 주고 샀다고 야단맞으려나. 같이 가서 사지 않고 혼자 샀다고 뭐라 하려나.
"이거 그 집에서 제일 용량이 크고, 최신형이래네.""아, 그러니까 얼마냐구.""40~~만~~원"아내가 반응이 좋다. 어차피 사기로 했고, 용량도 괜찮고, 브랜드도 괜찮고, 디자인도 괜찮고, 최신형이라는 것도 괜찮았나보다. 아내의 반응보고 당장 김치 통 값도 72000원 더 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카드로 긁어서 4만 원정도 더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추부터 내렸다. 다음은 김치냉장고. 차에 실을 때도 건장한 가게 아저씨와 겨우 실었는데, 아내와 나 단둘이서 그걸 내려야 했다. 신기하다. 그렇게 힘겹게 실었던 것인데, 아내와 나는, 특히 아내는 번쩍번쩍 그것을 든다. 살짝 낑낑대긴 했지만, 거실 한 곳에 김치냉장고가 자리 잡았다. 집에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내가 산 냉장고의 용량이 202L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