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지폐
박혜경
순간 '에이~ 택시비보다 더 비싼 버스 타게 생겼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잠깐만요"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앞에 서 계시던 어느 여자 분(30대 후반으로 보였음)께서 물었습니다.
"1000원짜리 없으세요?""아! 예~ 준비 없이 타서…"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하니 그 분이 버스 요금통에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는 게 보였습니다. 찰나였지만 얼굴이 화끈해지며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문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머니에 1000원짜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차피 만 원짜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이유없이 버스비를 대납해 준 저 분에게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는 순간 만 원 짜리 지폐 사이에 낀 1000원짜리가 보입니다.
얼른 1000원짜리를 꺼내 들고 "감사합니다"하며 그 분께 건네 드렸습니다. 그 분께서는 왜 선뜻 생면부지인 내 버스비를 대납해 주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단지 안에서 뵌 적이 있는 분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에 없는 분이기에 "혹시 저를 아세요?"하고 물었더니 짧게 "아니요"하고 모르는 사이임을 확인해 주십니다.
고마운 그 분께 소박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혹시 같은 곳에서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릴 곳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그 분은 차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내릴 기세가 아닙니다. 내려야 할 정류장 100m 전 쯤 돼서 그 분의 어깨를 두 번 톡! 톡! 노크했더니 고개를 돌려 바라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진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감사하는 마음을 "차비 고마웠습니다"라는 말로 전하니 가벼운 목례로 받아줍니다. 정말 찰떡 같은 마음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 찰떡 같은 마음이 그 분에게까지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뚝 떨어진 기온에 몸은 차가왔지만 마음엔 온기가 돕니다. 준비 없이 올라탄 버스에서 자칫 썰렁함을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에 군고구마나 주머니난로처럼 초 겨울의 한기를 따뜻하게 덥혀준 그 분이 참 고맙습니다.
혹시 8일 오후 9시 35분경, 유성온천역 사거리에서 가수원으로 가는 114번 버스에서 검은색 가죽점퍼 입은 키 작은 어떤 아저씨 버스비를 대납해 주시려고 했던 분이나 그 분을 아는 분께서는 이 글 보시면 연락 주십시오. 벽난로처럼 거창한 식사는 아닐지라도 주머니난로 같은 소박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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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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