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조계종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싼 조계사 총무원과 봉은사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봉은사 신도회 소속 신도들이 직영사찰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2신 보강 : 9일 오전 8시 50분]'명진스님은 도대체 왜 다시 조계종 총무원에 날선 비판을 하면서 판을 흔들지?'
8일 내내 불교계 안팎에서는 이런 의문이 터져 나왔다. 갈등을 빚는 명진스님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을 중재하던 화쟁위원회조차 같은 의문을 품었다. 화쟁위원장을 맡은 도법스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만도 하다. 명진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3월부터 갈등을 겪어왔다. 양쪽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화쟁위원회가 나섰다. 지금까지 8개월의 시간 동안 양쪽은 몇 가지를 합의했다.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하고 주지를 현 부주지인 진화스님으로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런데 다시 명진스님이 7일 일요법회에서 "직영사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그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에는 이명박 정부의 외압이 있다"고 총무원과 현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명진스님은 태도를 180도 바꿨을까? 명진스님이 신뢰를 깨고 변덕을 부리는 걸까? 보수 일각의 주장대로 그가 "서울 강남 노른자 땅에 있는 봉은사 주지 자리를 놓고 싶지 않아서"일까?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는 걸 명진스님이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그가 8일 오후 7시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특별법회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명진스님은 다시 "자승 총무원장이 야비하게 나를 압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용은 이렇다.
명진스님이 공개한 '총무원과의 갈등-사과와 화해-사태 해결' 과정은 화쟁위원회가 밝힌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선 사적으로는 서로 감정을 풀고, 그후 공개적으로는 봉은사가 직영사찰을 받아들이면서 현 봉은사 부주지 진화스님을 주지로 한다는 내용이다.
절차상으로 보면 이런 조정 내용은 9일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명진스님에 따르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봉은사 부주지 진화스님을 '호출'하면서 평화는 깨졌다. 진화스님이 '조계종 종회의원' 자리를 그만둘 것이라는 말이 나오면서부터다.
종회의원은 조계종의 국회의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조계종의 각종 중요한 규칙과 예산 등을 결정하며, 면책 특권을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면책특권이다. 직영사찰 주지의 권한은 많지 않다. 불교계에서는 '재산 관리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재산 관리인'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쉽게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종회의원은 쉽게 교체할 수 없다.
명진스님은 "진화스님에게 종회의원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결국 금방 주지를 갈아치우고 봉은사를 총무원장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승 총무원장은 모든 합의를 뒤엎고 야비하게 나오고 있는데, 이런 총무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명진스님은 "봉은사는 신도들이 지켜왔고 만들어 온 곳인데, 총무원이 마음대로 하는 걸 어떻게 지켜보느냐"며 "봉은사를 함부로 다룬다면, 내 몸에 피를 묻히고 비린내를 맡는 한이 있더라도 맞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명진스님은 "봉은사 직영전환 문제에는 이명박 대통령 형제가 깊이 간여하고 있다"며 "아직 내가 차마 공개하지 않은 내용도 많이 있다"고 향후 추가 폭로를 암시하기도 했다.
봉은사 신도들도 명진스님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봉은사 신도회는 이미 봉은사 입구 쪽에 천막을 치고 "명진스님을 절대 보낼 수 없다"며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한 봉은사 신도는 "명진스님은 조계종이 사과하라고 해서 했고, 직영사찰도 받아들였고, 주지 교체도 양보했다"며 "하지만 봉은사 주지가 종회의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자기들 마음대로 봉은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조계종 총무원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자승 총무원장 스님이 진화스님을 불러 종회의원 자리를 논의한 게 사실이라면, 화쟁위원회의 조정 내용을 잘 따르자는 취지에서 이야기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봉은사 신도들은 9일에도 조계사에서 직영사찰 전환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9일부터 조계사에서는 조계종 제15대 중앙종회가 열린다. 화쟁위원회는 이날 봉은사 새 주지를 추천할 예정이다.
[1신: 8일 오후 6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