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근초고왕>.
KBS
5개의 서북방 유목민족들이 북중국에 난입하여 16개의 나라를 세운, 중국 역사 속의 5호 16국 시대. 그로 인해 동아시아가 일대 혼란기에 빠져든 서기 4세기. 이런 혼란한 정세를 활용하여 백제의 영역을 남과 북으로 쭉쭉 확장시킨 백제 제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년).
바로 이 근초고왕 시대를 소재로 한 KBS1 <근초고왕>이 지난 6일 첫 전파를 탔다. 이 드라마의 기획취지는, '신라 중심주의'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근초고왕이라는 걸출한 백제 군주를 조명하고 나아가 백제사의 진면목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
이런 취지 하에서 <근초고왕>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덕화 분)의 후처인 소서노(정애리 분)가 전처소생인 유리 중심의 후계구도에 불만을 품고, 두 아들인 비류·온조와 함께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건국하는 장면을 드라마의 서두로 장식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고구려에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백제인의 정서가 근초고왕 시대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백제를 다룬 기존 사극들을 포함해서 드라마 <근초고왕> 역시 신라 중심주의를 크게 탈피하지 못하는 모습을 첫 방송에서부터 보여주었다.
백제가 신라보다 뒤늦게 건국되었다?백제가 신라보다 뒤늦게 건국되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대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백제 건국의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드라마 제1부의 초반부에서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고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는 자막과 해설을 내보냈다.
사실, 백제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서는 기존 사극들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까지도 온통 신라 중심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백제 건국연대에 관한 <근초고왕>의 실수는 비단 이 드라마의 실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실수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럼, 백제는 정확히 언제 건국되었을까? <삼국사기> 권23 '온조왕 본기'에서 김부식은 "한나라 성제 홍가 3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고 했다. 한나라 성제 황제(재위 기원전 33~기원전 7년) 때의 연호인 홍가(鴻嘉) 3년은 기원전 18년을 가리킨다.
김부식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 신라가 고구려·백제보다 약간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는 김부식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고로 신라가 원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설'이 조작이라는 점은, <삼국사기>의 여타 부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조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일이다.
백제의 건국연대를 풀 수 있는 단서는 다름 아닌 김부식의 <삼국사기> 안에 있다. <삼국사기> '온조왕 본기'에서 김부식은 주몽의 후계구도에 불만을 품은 온조왕이 어머니 및 형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웠다고 했다. 따라서 백제의 건국연대는 고구려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정확히 도출하면, 백제의 건국연대도 함께 도출되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김부식은 신라 건국보다 20년 뒤인 기원전 3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삼국사기>보다 훨씬 먼저 나온 <한서> 기록과 충돌한다. 중국 한나라(기원전 202~서기 8년)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 '지리지' 권28하(下)에서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립할 당시에 한사군의 하나인 현토군 안에 고구려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