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댁
최지혜
이렇게 가을의 정취에 취해 걸으면서도 딱 한곳,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곳이 있다. 하회마을로 오는 버스안에서 주최측에서 나눠준 책자를 살펴보던 중 그 훈훈함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던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답게 안동하회마을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굳이 나열을 하자면 앞서 설명한 화천서원, 옥연정사, 병산서원을 제외하고서도 양진당(보물 제 306호), 충효당(보물 제 414호), 남촌댁(중요민속자료 제90호), 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작천고택(중요민속자료 제87호), 하동고택(중요민속자료 제177호),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 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 빈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차가워진 내 맘을 녹인 곳은 북촌댁이라는 고택이다. 책자에 소개된 여행작가 한은희님의 글에 의하면 이 북촌댁은 '나눔과 배려를 실천한 집'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사랑채에서 부인이 머무는 안채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동할수 있도록 문을 낸 것,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아이가 안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몸집에 맞는 작은 문을 내어준 것 등은 가족간의 사랑이 느껴져 따뜻하다.
또한 큰사랑채 '북촌유거'를 짓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목재를 홍수 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죄다 밀어넣고, 남은 것은 불을 붙여 주위를 밝히는 데 사용했다니 집주인의 훈훈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담장 밖으로 화장실을 내어 급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이용하게 한 점, 노비들이 머무는 행랑채를 없애고 인근에 그들만의 초가를 지어 노비들에게도 밤 시간만큼은 가족끼리 지내도록 배려한 점, 소작인들과 수확을 반반씩 나눈 점 등은 그 시대에서는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니, 글로나마 그 시대를 알았던 현대인들에게도 무척이나 파격적인 일이다.
'몇년도에 지어져 몇년도에 보물 몇호로 지정되었다'와 같은 다소 공식적인 배움보다는 때로는 이런 소소한 생활상의 배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북촌댁 앞마당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옛 주인장의 하해와 같은 마음씨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북촌유거 뒤쪽을 돌아 하회마을을 닮아 하회소나무로 이름지어진 나무를 찾아보자.
올해로 두 번째 방문인 안동하회마을. 양반의 곧은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너무나도 점잖아보이는 마을이지만, 은은하게 풍겨오는 사람 냄새도 느껴지는 이곳.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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