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G20 정상회의 관련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권우성
검증 불가능한 G20 서울회의 경제적 효과그러나 이러한 간접효과의 추산 방법은 픽션에 근거한 소설과 같다. 마치 서울 정상회의 이후의 모든 성장과 발전의 원인이 모두 정상회의 행사 개최로 인한 것인 양 공을 돌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난 월드컵 때도 100조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일부 연구소들이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러한 효과가 일어났는지 검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 후에도 예상했던 효과가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 또한 없었다.
이러한 검증불가능 효과에 대해 연구소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나름 과학적인 분석법을 동원해 추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의미없는 일을 한 셈이며 굳이 의미를 찾자면 정부의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는 것 정도일 뿐이다. 이러한 예는 과거 ASEM 회의와 APEC 회의를 개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정부와 일부 언론은 위와 같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국가브랜드를 높여야 된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말대로 이렇게 안전하고 기초질서가 확립된 국가 이미지가 각국 정상회의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다면 국격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의 필요조건이 과연 국민을 홍보·동원의 대상으로 여기고, 각종 생활에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진행해야 하는 철통방어와 기초질서 확립에 있을까?
자율과 참여의 시민의식에 근거하지 않은 채 국민 동원으로 쾌적한 회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행사기간 동안 자동차를 하루 쯤 쉬게 하는 것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블룸버그 뉴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가?G20에 대해 알려면 먼저 그 전신인 G7부터 알아야 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문제 등 세계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4년 11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 정상회담이 처음 개최되면서 'G5'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후, G5는 75년 이탈리아, 76년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G7 체제로 세계경제를 이끄는 선진국 테이블로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또한 90년대 러시아가 합류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광범위한 의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 영향력은 점차 확대돼 왔다.
2000년대 후반,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이들 G8국가의 조율만으로는 위기 극복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 중국·인도·한국 등 신흥국들을 대거 참여시키면서 오늘날의 G20이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 G20의 과거 탄생 배경을 보면 G20의 정당성과 민주성, 그리고 대표성을 갖춘 기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남게 된다. 하지만 G20의 탄생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결'이라는 단기적인 이슈 대응차원에서 유연성 확보를 위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탄생에서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 보다 문제인 것은 정상회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이다.
허울만 남은 세계 정상회의금융시장의 세계화·복잡화로 인해 국가단위에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2008년 11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G20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시에는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 대책 마련과 함께 금융위기의 재발방치책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급작스레 위축된 실물경기를 활성화하고자 경기대응적 재정 및 금융정책을 통해 적극적인 거시경제정책을 공조하기로 각국이 합의했다.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신뢰성 제고 등을 목표로 다양한 의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또한 각국 간의 공조를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여 새로운 무역·투자장벽 신설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국제기구 개혁을 통해 신흥국의 지위를 제고하기로 함으로써, 이들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2차로 열린 런던 정상회의에서는 워싱턴에 합의한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재정확대 등 거시경제정책 공조', '보호주의 저지', '신흥·개도국에 대한 자금지원', '금융규제 및 감독 강화', '국제 금융기구 개혁', '부실자산 정리 등 금융안정 조치' 등의 의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1년까지 IMF의 쿼터조정을 완료하기로 하고, 7500억달러에 달하는 IMF 자본 확충에 합의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피츠버그·토론토 정상회의 등 계속된 회의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가운데, 탐색전 성격의 회의가 진행되면서 합의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머물렀다. G20 주요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되자 국제금융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할 것이라고 큰 소리쳤음에도, 경기부양과 구제 금융 등으로 발등의 불이 사그라지자 처음 목소리와 달라졌다.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평가와 반성에 근거한 금융통제 방안에 대한 어떤 합의도 이루어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금융권의 로비로 인해 규제안은 점차 완화되어 점차 금융규제라는 명분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융기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은행세의 경우, 지난 6월 토론토 회의에서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Agree to disagree)'한다는 상식 밖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