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살도시 (Suicide City) - 68

스무고개 진본(珍本)

등록 2010.11.01 13:17수정 2010.11.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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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자살률이 일곱 배로 치솟았죠. 환자들, 특히 의사들은 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전적으로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인신공격이었지만 나로서도 희한하기는 마찬가지였죠. 문득, 특정한 인물 때문에 자살률이 상승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로빙 ---

 

그 병원의 자살률이 급상승한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달랐죠. 고참은 일시적인, 일종의 유행성 감기 정도의 사안으로 파악했지만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오히려 원장이 어떤 문제를 감춘다는 의심이 들더군요. 그러다 원장이 자살을 조장하는 음모를 꾸미는 스토리가 생각났어요. 

                                                                  --- 토멘 ---

 

어느 날 숙모가 병원에서 제 아버지를 봤다고 했어요. 알고 보니 딴 사람을 착각한 거였죠. 사실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이미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근데 숙모는 아버지라 철썩 같이 믿고는 충격으로 자살하셨고 그 사람도 죄책감으로 자살하고 말았어요. 황당했죠.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떠오르는 착상이 있었어요. 가출한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자살한다면?

                                                                 --- 미아라 ---

 

 

5년,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었소. 보통 그 정도 세월을 감방에서 보내면 딱 2부류로 나뉩니다. 재범자가 되거나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거나, 보통 전자가 압도적입니다. 저는 제 3의 길을 가려 했죠. 비인간적인 대우를 많이 받았기에 감옥을 없애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작심했어요. 그러자면 뭔가 사회에 반향을 일으켜야 되잖습니까. 감옥에 있을 때 재소자 중 한명이 자해하겠다고 교도관을 협박했어요. 효과는 미미했지만 수감자들이 집단 자살한다고 시위하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했죠. 비인도적인 상황이 극한으로 가면 사회적인 관심을 끌 거라 여겼습니다.

                                                                 --- 유니트 ---

 

 

신자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어요. 신을 섬기는 저로서는 묵과할 수도 없고, 저의 기도와 믿음이 약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저는 끝임 없이 기도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고 다른 교회도 비슷한 상황이라 저는 제 믿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차라리 신이 어떤 일로 분격하셔서 벌을 내리는 거라 해석했죠.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일까 고민하다 불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자살로 심판하시는 종말을 가정하게 되었죠.

                                              ---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성직자 ---

 

 

대출 받고 바로 자살하면 어쩝니까? 참 희한한 건 그 돈을 쓰지도 않고 자살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신용도 좋은 사람들이. 그리고 본점뿐만 아니라 지점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죠. 돈으로도 안되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 특히 돈을 쓰지도 못하고 죽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나. 그게 제 머리에서 번뜩였죠.

                                                                  --- 캐럿 ---

 

 

종군기자로 일하다 죽은 줄 알았던 예전 선배한테 연락이 왔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했는데 조금 의심이 가더군요. 하여간 그날 밤 만나자고 했는데 약속장소인 호텔에 가니까 소포만 달랑 남겼더라구요. 뜯어보니 그분이 전쟁터에서 억류되어 있으면서 썼던 기록이었어요. 그러고는 며칠 뒤 허름한 선술집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어요. 기록도 기록이지만 이거 자체가 완전 소설감이라 확신했습니다.

                                                                 --- 팔로어 --- 

 

 

편집장이 자살 관련 특집기사를 쓰라고 했어요. 근데 뭐 아는 게 있어야죠. 저보고 자살 시도한 사람들의 클리닉 센터에 가서 밀착 취재를 시켰어요. 그 사람들과 동화되어야 자살 심리를 알 수 있으니까 실제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위장하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일주일 있었는데 환자들과 어울리다 정말 자살할 뻔 했어요. 그 경험, 아직도 못 잊겠어요. 위장 자살자, 그때 체험으로 나온 아이디어였죠.

                                                                 --- 라이즈 ---

 

이상하게 그 달에는 자살 상담을 하는 환자들이 많았어요. 대개 자살하는 사람들 심리는 비슷한데 한 사람이 아주 특이했어요. 삶을 포기한 것 같으면서도 강렬히 살겠다는 의지가, 진짜 딱 절반씩 있어서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면 자살하거나 열심히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은 제가 일하면서 유일했죠. 삶과 죽음에 반쪽씩 걸쳐있는 사람, 그런 소재면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 하트 --- 

 

 

졸업 작품의 주제는 자살이었습니다. 그때 수강생들 실력으로는 좀 난해한 주제이긴 했지만 마침 사회적 이슈도 자살 급증이라 한번 해볼 만했죠. 큰 기대 안했는데 의외로 수강생들이 구상한 스토리나 소재들이 꽤 참신했어요.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모자란 구석이 있었지만 이거 잘만 섞어놓으면 작품 하나 나오겠다 싶었죠. 그래서 여러 날 토의하고 이야기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정리하면서 이 책이 나온 겁니다. 아마 세계 최초로 집단지성을 활용한 소설이 아닐까요.

                                                                --- 워들링 --- 

2010.11.01 13:17ⓒ 2010 OhmyNews
#자살 #현존(現存) #집단지성 #폴리스 #재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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