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책과 꽂힌 책.
최종규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창작 그림책이 제법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림책을 그리는 수많은 그림쟁이 작품을 곱씹는다면, 이우경 님이 이룩하던 틀과 맛과 멋과 매무새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그림책을 그려내지 못합니다.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왔다거나 무슨 미대를 다녔다거나 누구한테서 배웠다는 이름쪽을 내미는 그림쟁이는 많으나, 정작 눈물나거나 웃음나는 그림을 산뜻하게 내놓는 그림쟁이는 손가락으로 꼽기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우경이라는 큰 그림쟁이 한 분이 있어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리고 즐길 만한 멋진 그림 이야기 하나 물려줄 수 있습니다. 다만, 이우경 님 숱한 그림책을 알아보는 손길은 아주 적고, 이우경 님 살가운 그림결을 읽어내며 받아들이는 마음길은 더욱 적습니다. 더욱이, 이우경 님처럼 스스로 제 그림결을 튼튼히 세우며 알차고 아름다이 그림누리를 펼치는 그림쟁이는 너무나 적습니다.
나라밖에 에즈라 잭 키츠나 앤서니 브라운이나 윌리엄 스타이그나 고미 타로나 누구누구가 있음은 알거나 이런저런 이들을 비평하는 전문가는 꽤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밖 그림책과 그림쟁이는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라안 좋은 그림책과 그림쟁이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눈높이와 눈썰미를 북돋우는 살가운 그림책을 일구려는 손길이 모자랍니다.
.. 그(이승훈)는 여기서도 그의 독특한 개화주의 운동을 폈다. 그는 교회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용동 마을 사람들에게 하던 것처럼 민족주의 고취와 민족성 개조에 대한 말을 잊지 않았다. "모두들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거리를 비로 씁시다. 깨끗한 환경에서는 병도 덜 생기고 무엇보다 마음이 밝아져 하는 일이 잘 될 것입니다." … "여러분! 집을 깨끗이 치우는 일과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일, 부지런히 일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주는 일, 그것이 바로 나라를 위하는 일이며 개화입니다." … "아니외다. 걸레질하며 이것도 겨레 위해 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나는 오히려 마음 편하다오." .. (28∼31쪽)
1권 동명성왕, 2권 광개토대왕, 3권 을지문덕부터 28권 윤이상, 29권 이태영, 30권 정주영까지 담은 '올컬러한국위인특대전집' 서른 권입니다. 헌책방에서 가끔가끔 짝 잃은 한 권씩 만나는데, 언젠가는 서른 권 한 질을 통째로 만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권마다 어느 분이 어떠한 틀로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는가를 즐거이 어루만질 날을 맞이해 보기를 손꼽아 봅니다. 뜻과 돈이 있는 출판사에서 그림쟁이 이우경 님 그림책을 '모두 모은 책묶음'으로든 '가려뽑은 책묶음'으로든 내놓아 주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이 될는지 꿈을 꿉니다.
일본 '이와사키 쇼텐' 출판사에서 1983년에 내놓은 어린이책 전집 가운데 하나를 옮긴 '컬러판 자연의 탐구' 가운데 몇 권을 봅니다. 모든 짝이 다 있지는 않고 여섯 권을 봅니다. 1권 <파리지옥>, 7권 <감나무의 1년>, 9권 <나무 눈의 겨울나기>, 18권 <소금쟁이의 생활>, 3권 <송사리의 탄생>, 23권 <종자와 싹트기>를 들춥니다. 계몽사에서 1987년에 우리 말로 옮기는데, 계몽사 판본을 살피면 이 책이 일본에서 엮고 만든 책임을 제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책 끄트머리 간기 맨 아래 자리에 잔글씨로 "1987년 일본의 이와사키 쇼텐 사와의 출판 계약에 의하여 본 도서에 대한 일체의 한국내 출판권은 주식회사 계몽사가 독점 소유함"이라고만 적습니다. 책마다 누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는지, 이 책묶음을 어떠한 뜻으로 기획을 해서 내놓았는지, 이 책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따위는 알 길이 없습니다.
계몽사에서는 외려 '한국 감수자' 이름을 가장 큼직하게 책 앞뒤에 새겨 놓습니다. 간기 자리에는 감수자 소개를 달아 놓습니다. 그나마 일본책을 우리 말로 옮긴 사람이 누군가마저 밝히지 않습니다. '창작자'와 '번역자' 이름은 없는 알쏭달쏭한 책입니다. '감수자' 이름만 대문짝만 하게 달아 놓은 아리송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