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 철도 부설 당시에 지은 듯한 자그마한 역사였는데 그새 그 역사는 사라지고 새 역사가 황토색 페인트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두 동(棟) 나란히 붙어 있었다.
나는 역장인 듯한 역원에게 김우종 선생의 소개장을 보이면서 사진 촬영 여부를 물었다.
그는 안중근 의사와 지야이지스고 역의 지난 역사를 이미 알고 있는 듯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마음대로 찍으라고 했다.
역사 안팎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1909년 10월 25일 우덕순과 조도선이 오들오들 떨면서 이틀 밤을 새운 역 구내 매점과 식당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새 역사를 지으면서 모두 헐어버린 듯했다.
다만 역사 뒤 한 모퉁이에 옛 창고 같은 공간이 있기에 그곳이 구내매점과 식당으로 우덕순, 조도선 두 사람이 이토를 태운 열차가 지나갈 때 전후로 러시아 병사에게 연금된 곳이 아닐까 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지야이지스고 역은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의 접도 지역으로 지린성 부여시에 속한 우리나라 읍에 해당하는 지야이지스고 진(鎭)의 나들이 역이다. 드넓은 만주 평야에 한 점처럼 역사가 서 있을 뿐 허허벌판이었다.
역사 언저리는 옥수수 밭으로 이미 추수가 모두 끝나 들판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지야이지스고 역 철로에 머물고 있는 화차에 트럭에 싣고 온 옥수수 부대를 화차에 옮겨 싣는 몇 인부들만이 분주할 뿐이었다.
혹이나 옛 흔적을 찾아보려고 역사 언저리를 몇 바퀴 돌았지만 썰렁한 바람만 일어날 뿐이었다. 마침 역 앞에 일백년은 더 묵었을 버드나무가 두 그루 서 있기에 아마도 이 나무는 그날의 일들을 알듯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역 대합실로 가 창춘으로 가는 남행열차 시간을 보니까 16시 37분에 있었다. 지야이지스고 역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만 열차가 서는데 만일 다음 차로 내려왔다면 이 벌판 역 대합실에서 나도 우덕순, 조도선 두 사람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꼬박 밤을 새울 뻔했다.
역사 안팎의 답사와 촬영을 마치자 15시 10분으로, 다음 열차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은 더 남았다. 요기나 할까 하고 언저리를 살폈더니 역 앞에 서너 집이 있었는데 찬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한 가게가 보여 들어갔더니 상품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기에 포장된 비스킷 한 개와 음료수 한 병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역 앞 화장실을 들렀더니 그곳은 아직도 한 세기 전 화장실로 아침 먹은 것까지 토할 뻔했다.
사실 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지난날 그와 같지 않았든가. 10년 전 첫 중국대륙 답사 때만 해도 웬만한 곳의 화장실은 개선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 세 번째 갈 때마다 많이 개선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넓은 나라이기에 아직도 지야이지스고와 같은 시골까지는 화장실 문화 개선이 더딘 듯했다. 눈도 감고 호흡도 멈춘 채 용변을 재빨리 보고 대합실로 돌아왔다. 썰렁한 의자에 앉아 참선을 하듯 눈을 감았다.
2010.10.29 16:5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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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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