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천국 대욕장 남탕.카운터를 지키는 종업원이 여성, 아줌마다.
노시경
웃기는 것은 남탕의 카운터를 지키는 사람이 남성이 아닌 여성, 아줌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이 이국적 상황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과연 저 아줌마는 벌거벗은 남성들이 옆을 걸어 다니는데 아무런 성적인 느낌이 없을까?
일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욕탕에서 수건으로 성기를 가리고 다니지만 지금 보니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바쁠 일 없는 나는 잠시 그 아주머니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일본 아줌마는 모든 남자들을 쳐다보지는 않지만 성기를 내고 돌아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자연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 것이다.
이 일본 아주머니는 마치 우리나라 남자 화장실에서 일하시는 청소부 아줌마들 같이 자연스럽다. 많은 부분이 비슷한 듯한 일본이지만 이럴 때 일본은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나라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이 아줌마 앞에서 괜히 손으로 거시기를 가리게 된다.
온천천국 대욕장 2층에 자리한 남탕은 생각보다 매우 넓고 깨끗했다. 남탕 안에는 효능과 온도가 다양한 탕이 있다. 노보리베쓰에서 가장 크다는 욕탕, 걷기용 족탕, 누울 수 있는 탕, 창밖이 보이는 탕, 족욕탕, 물대포탕, 폭포수탕. 내가 경험한 일본의 온천탕 중에서도 다이이치타키모토칸 온천탕이 가장 컸다.
일본인 가족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도 별로 없이 한적하다. 나는 탕에 들어간 후 일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수건을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온천에 짙게 퍼진 유황 냄새가 나의 코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왔다. 처음엔 불쾌한 냄새였지만 유황 냄새도 자꾸 맡으니 적응이 되고 있었다. 부드러운 온천수 속에서 여행의 피로는 금세 잊어 버렸다.
노천탕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고요한 밤하늘 아래의 노천탕은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밤의 화산계곡도 너무나 신비하다. 지옥계곡 숲 속에서 서늘한 밤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기와 활화산의 유황냄새가 섞여 있었다. 다리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천수의 느낌과 머리에 닿는 밤하늘의 차가운 느낌이 섞이고 있었다.
남탕의 노천탕은 지옥계곡을 향하여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지옥계곡에서 망원경으로 보거나 다이이치타키모토칸 바로 앞까지 온다면 남탕의 벌거벗은 남자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천탕은 남탕만 보일 것이다.
욕탕 내부의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니 실내수영장이 있다. 수영복을 입고 온천수 안에서 수영하는 곳이니 수영복만 입으면 남녀 가족이 같이 만날 수 있다. 나는 신영이가 오기 전에 수영장의 기다란 미끄럼틀을 타고 온천수 속으로 수차례 몸을 던졌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 신영이가 들어왔다.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전보다 많이 큰 게 보였다. 신영이는 미끄럼틀을 타고 놀다가 수영도 하다가 수영장에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있었다. 실내수영장 밖, 기포가 생기는 욕탕인 자쿠지. 나는 신영이와 따뜻한 노천 자쿠지 안에서 한참 동안 몸을 쉬었다. 이렇게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딸도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딸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면서도 괜히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