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를 가운데 두고 좌 피터판과 졸개들 그리고 우 백설공주와 졸개들을 그려 보았다.
조영삼
똥가리의 아지트였던 아이 방, 침대 맞은 편 벽에는 어설픈 솜씨지만 내가 직접 그린 어린왕자 똥가리가 아빠별을 그리워 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리고 주변엔 녀석이 좋아했던 동화 속 주인공들이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문지방 너머 벽면에는 녀석이 그린 그림들이 잘 익은 7월의 포도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다. 해서 나는 이 집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이다. 혼자 살기엔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똥가리와 나는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인터넷 무료통화 시스템으로 일주일간의 애틋한 회포를 푼다. 독일과 똥가리가 있는 한국의 시차는 대략 8시간이다. 해서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벌써 한국은 늦은 밤이거나 새벽이 시작된다. 평일 날 부자간의 대화는 '대략난감'인 것이다.
"한얼아, 유치원에서 친구들 많이 '사귀었어'?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데?""응, 아빠! 친구들도 많이 많이 '사겼고' 선생님도 참 좋아. 근데 아빠, 유치원이 아니고 어린이 집이야. 아빠는 그것도 몰라? 아빠는 별거별거 다 알쟎아." 녀석이 이젠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만 똥가리 아빠인 나, 흐믓하게 미소를 짓고 대견스런 마음으로 곁다리를 걸친다.
"뭐, 점심 때 아빠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먹었다고? 아니 이녀석이 아빠도 안주고 그 맛있는 것을 혼자 다 먹었단 말이야? 아빠가 지금 아, 하고 입을 벌릴 테니 한 입만 주라.""에이, 아빠. 아빠는 독일에 있고 여기는 한국인데 어떻게 줘. 아빠는 진짜 웃겨. 헤헤헤.""그래도 한 입만 주라아. 자, 아? 아빠 입 벌렸다.""그래, 아빠 알았어. 자, 한 번만 줄께. 맛있게 잘 먹어. 아? 아빠, 맛있지. 그치, 응?""아이구, 맛있다. 냠냠냠." 언젠가 엄지 엄마, 똥가리, 그리고 똥가리 아빠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 처마 밑에 '베스페'라고 하는 고기를 즐기는 땅벌 떼가 둥지를 튼 적이 있었다. 똥가리아빠는 당연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땅벌 떼를 그냥 살게 두자니 똥가리와 엄지엄마가 물릴까봐 걱정이고, 내치자니 무자비한 행동이 뒤 따를 것 같고, 하! 이거 어쩐다?
혼자라면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같이 살 것이다. 여왕벌을 정점으로 군집 사회생활을 하는 벌들은 자극을 주지 않으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똥가리 아빠야 어지간한 동물들의 생리를 상식 수준이나마 알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똥가리와 엄마가 문제인 것이다.
특히 똥가리는 한 번 땅벌에게 물린 경험을 갖고 있는지라 벌을 보면 기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빠 곁을 떠나기 전에 아빠와 산으로 들로 숲으로 많이 헤집고 다녀서 예전처럼 질겁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안방에 까지 들어와 앵앵거리는 땅벌들을 '똥가리를 위해서'란 변명을 달아 눈 딱 감고 내치기로 한 날, 똥가리 아빠는 고기를 좋아하는 땅벌 들에게 마지막 고깃덩어리 보시를 했다.
"땅벌들아. 이거 맛있게 냠냠 많이 묵고 나를 용서하거라. 하고 많은 집 처마 다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집에 둥지를 틀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동경하는 나를 고민하게 만드노 말이다. 정말 미안하다."까맣게 타들어 가는 아빠 속도 모르고 똥가리 녀석은 고기 먹는 벌들이 신기한 듯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히야. 벌들이 꿀은 안 묵고 고기를 묵네. 아빠, 그거 맛있는 고기지? 나도 먹을래. 아빠도 먹어. 아, 하고 입벌려. 아빠, 자아. 아빠, 맛있지. 그치, 응. "
똥가라 아빠의 바람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