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이 타고갔다는 바위일본에서는 연오랑과 세오녀를 철기기술을 전해준 사람으로 숭배한다고 한다.지금도 철기기술을 비롯한 각종 문화를 전해준 것은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올린것 만큼이나 위대했다고 비유한다.
경북일보
그러면 이들이 왜 떠났고, 그로 인해 왜 신라는 해와달을 잃었다고 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달라왕이 지배하던 시기의 신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때 석탈해의 석씨가문은 박씨가문이 왕위를 잇던 신라에서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박씨가문은 전통농경사회를 바탕으로 왕이 된 가문입니다. 이들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철기시대의 냉정한 법칙인 정복과 지배에는 맞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가문을 존경했습니다. 그 질서를 무너뜨릴 힘이 막 사로국 정계에 진출한 석씨가문에겐 없었습니다.
석씨와 박씨가문의 왕위다툼 싸움이 그 유명한 이빨자국 싸움입니다. 떡을 깨물어서 이빨자국이 큰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때부터 사로국의 수장은 이사금이라고 했고, 이것이 이후 음가가 변환되어 임금이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일 것입니다.
여기서 왜 석씨가문이 그 우수한 철기기술을 가지고도 김수로처럼 신라(라기 보다는 사로국)을 장악하지 못했는지 보입니다. 이빨자국은 단지 은유였을 것입니다.
이빨자국이 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긴 합니다. 다른 문명들 속에서 수장을 뽑는 절차에 이런 것이 있다면 매우 수월하겠지만 그런 연구논문을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나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일본의 종교학자가 인디언들의 추장선거방식을 소개한 글에 힌트가 엿보였습니다. 박혁거세의 등극과 연관해보면 이 힌트는 매우 의미심장하였습니다.
인디언들은 추장이 되길 꺼려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너무 고달파서였다고 해요. 이사금시대가 계속될 동안 왕이 되길 고사하는 일이 정말 많이 벌어지는데 아마 동일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토록 왕이 되길 꺼려하는 조건은 '가진 것을 남에게 줘라'라는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달라면 무조건 주는 것이지요. 옷도 벗어주고 먹을 것도 줘야 했습니다. 이런 것을 박혁거세 신화에서는 '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박혁거세에 대해 살아서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권력자요 죽은 뒤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가 아니라 '성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디언들이 추장이 되기 위한 다른 조건은 바로 '말빨이 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요 바로 이것이 '이빨의 크기'가 아닐까요?
사로국의 6촌 사람들은 수장을 뽑을 때 한자리에 모여서 추대합니다. 사로국판 아크로폴리스라고 할 만한 장소에서 석탈해와 유리왕은 '정견발표'를 했고, 사람들은 유리왕을 선택했습니다. '이빨이 쎄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우리가 말빨이 쎈 사람을 이빨이 쎄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석탈해는 호공이라는 강력한 귀족의 권력을 탈취하면서 평화로운 사로국을 정복과 지배의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가진 힘인 제철기술은 당시 왕인 남해차차웅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터라 사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삼국이 쟁투를 벌이던 시대와는 동떨어진 채 고구려도 백제도 각각 작은 소국시대였기에 강력한 석탈해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매제인 유리왕에게 '덕'과 '이빨'에서 밀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왜 유리왕때 '한가위'의 전통이 시작되었는지도 이해하게 해줍니다. 철기문명에 맞선 농경문명의 단결력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박씨 가문을 정점으로 하는 사로국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마당이니 석탈해가 유리왕을 누르기란 쉽지 않았지요.
유리왕이 죽은 뒤 석탈해는 왕이 되었지만 석씨가문은 사로국사람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권력욕을 버릴 생각이 없는 석탈해는 초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신라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그의 권력욕은 새로운 권력자를 불러들였고, 그 권력자가 앞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었으니까요.
4.
궁지에 몰린 석탈해의 선택은 연합전술이었습니다. 김알지가 왜 이시대에 석탈해에 의해 길러졌다고 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것이지요. 엘리아데는 '인간의 문화적 창조물에는 틀림없이 어떤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김알지의 탄생설화 속에 감추어진 비밀은 그것이었던 것이지요.
김알지 가문은 석탈해와 같은 제철가문이지만 오래전에 내려와 이미 계림이라는 숲을 장악한 강력한 가문이었습니다. 고대 제철가문은 대부분 이렇게 철광석을 얻기 쉽고, 땔감을 구하기 쉬운 숲속에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제철유적지가 있는 곳은 이런 곳이고, 서양에는 숲속에사는 도끼든 거인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것에서 영감을 받아 고대 제철유적지인 '타타라 유적'을 바탕으로 '원령공주'를 만들기도 합니다. 숲은 그래서 제철가문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지요. 김씨가문이 계림에 살았고, 계림을 숭배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