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양정환이 쓴 <소리바다는 왜?> 겉 표지
현실문화
세계적인 IT 강국이라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글 검색, 애플 아이튠즈, 트위터, 페이스북 같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서비스가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리바다 설립자이자 김태훈과 함께 <소리바다는 왜?>(현실문화연구 펴냄)를 쓴 저자인 양정환은 바로 정부와 대기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모바일이든 인터넷이든 대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장악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개인 개발자들에게까지 기회가 가지 않는 것이다. … 정부가 수립하는 정책들이 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특정 기업들, 특히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지원하는, 일종의 진입장벽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에 의무적으로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게 한 것, 인터넷 실명제 같은 것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음악시장에서 DRM 음악파일을 고집하고, MP3 휴대전화 보급을 막은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거죠.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 후 불과 1년도 안 되어 100만 대를 돌파하고, 휴대전화 시장을 비롯한 모바일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소리바다'가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모든 일은 IT강국 대한민국이 왜 '우물 안 개구리' 밖에 되지 못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소리바다라는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좌절된 인터넷 혁신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소리바다 운영자였던 양정환은 책의 대담 부분에 등장하며 대부분의 내용은 김태훈이 저술했습니다. 대표 저자 김태훈은 콘텐츠진흥원의 음악산업팀장을 맡아 저작권위원회의 실무를 담당하면서 불법(?) 다운로드 서비스 회사로 알았던 소리바다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리바다'의 잊혀진 10년, 무슨 일 있었나
여러분은 소리바다를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용자라면 대부분 기억하는 인터넷 음악 공유사이트가 바로 소리바다입니다. 한때 가입자 수 2000만 명이 넘었던 소리바다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용하는 사람은 당시만큼 많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소리바다를 둘러싸고 있었던 일을 정확히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소리바다'를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10년 현재 '소리바다'는 합법적으로 음악을 판매하는 사이트입니다. 현재는 애플의 '아이튠즈' 같은 대박 가능성을 잃어 버린, 인터넷 음악 사이트 중 국내 2위를 차지하는 견실한 중소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소리바다'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책까지 써야 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혜성 같이 나타난 인터넷 음악서비스 소리바다의 데뷔 성적표입니다.
"가입자 수 2000만 명, 소리바다가 2000년 5월 P2P 기반 음악서비스로 세상에 나타난 지 불과 3년 만에 세운 기록이다. 2000만 명이면 이 땅에서 컴퓨터를 다루고 인터넷을 즐기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소리바다를 이용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최다 가입자와 열성적인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던 소리바다가 10년 만에 평범한 음악 사이트가 됐습니다. 저자는 소리바다가 정상에서 추락하는 과정에 우리 IT산업의 모순이 압축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혁신을 두려워하는 대기업의 공격적인 견제와 정부의 적당한 무관심 혹은 대기업 편들기 속에서 무궁하게 꽃필 수도 있었던 한국의 디지털 혁신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소리바다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냅스터와 소리바다의 차이는?
숀 패닝이 만든 세계 최초의 P2P 서비스인 냅스터는 '쌍방향성'과 '공유'라는 특성 때문에 순식간에 인터넷 문화의 우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냅스터의 경우 '검색 서버를 직접 만들고 관리한 행위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불법 파일 교환을 의도적으로 조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 때문에 불법 서비스로 규정 당합니다.
"소리바다는 미국에서 검색서버에 대한 판단(2001년 2월)이 내려지기 이전에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고, 피어가 피어를 직접 검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2000년 6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서버를 이용할 수 없게 돼 선택한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미국에서 냅스터는 여러 차례 법정 논쟁을 거친 끝에 2001년 7월에 최종적으로 폐쇄됩니다. 냅스터가 폐쇄된 것은 곡을 관리하는 서버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도 P2P 기반의 소리바다와 관련해 세 가지 소송이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첫째는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신청이고, 둘째는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셋째는 저작권법 위반 형사고발이었습니다.
냅스터와 달리 소리바다는 검색 서버를 관리하지 않았지만 '회원을 관리하는 서버도 위법하다'는 국내 판결로 2002년 7월 31일 처음 폐쇄됐습니다. 그러나 문을 닫은 지 정확하게 24시간 만에 '슈퍼피어 기능'을 장착하고 서버가 존재하지 않는 '소리바다2'로 부활했습니다. 이로써 위법성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2005년 1월 당시 소리바다 운영자인 양정환, 양일환씨가 각각 2000만 원의 배상금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습니다. 2000년 8월에 시작된 저작권법 위반 형사소송은 지방법원,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7년 4개월 후인 2007년 12월 대법원에서 패소하게 됩니다. "서버는 없지만 미필적 고의로 사용자의 복제권 침해행위를 용이하게 해주었다"는 취지입니다.
소리바다를 만든 양정환씨는 소송과 별개로 합법적인 음악유통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음악권리자들과 합의를 통해 '소리바다3'를 오픈합니다. 소리바다3는 '부분 유료화'만으로 월 100만 곡의 판매라는 놀라운 실적을 보입니다.
그러나 소리바다3 역시 손해배상 소송을 거쳐 2005년 11월 7일에 서비스를 중단했고, 2006년 2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에 보상금 70억 원을 비롯한 85억 원을 지불하게 됩니다. 이 합의를 바탕으로 2006년 3월 1일에 '보호음원의 필터링 시스템'을 적용한 소리바다5의 베타서비스를 시작했고, 2006년 7월 10일에 월정액 3000원인 유료서비스로 전환되었습니다.